오래 됨을 인정받는 문화
나와 남편, 두 딸 우리 네 식구는 70년 된 집에 살고 있다. 이 집은 1950년도에 지어졌으니 정확히 말하면 67년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6.25 전쟁으로 난리 통일 때 때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집 공사가 마무리되었을 테다. 내 아버지가 겨우 말문이 트였을 무렵, 어머니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때의 일이었겠지. 우리 집은 2층으로 된 집이 4채씩 한 건물에 붙어 있는 '테라스 하우스'의 끝 집이다. 작년 8월, 결혼 14년 차에 내 생애 처음으로 (은행과 손 잡고!) 구매한 집이기도 하다.
영국 에든버러에 와서 1년 반 동안 플랏*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다. 매달 120만원 꼴의 월세를 집주인에게 주고 나니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모으는 건 더더욱.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서 은행에 돈을 갚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 같았다. 도심은 비싸니까 도시와 바로 인접해 있는 곳 중에서 학군을 따져 선택한 곳이 지금 우리 마을이다. 이곳은 원래 주민수 2000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몇 년 전부터 정부가 계획적으로 발전시키는 곳이라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지어진 집도 수백 채고, 들판을 갈아엎어 집과 편의시설을 짓는 공사가 아직 한창이다.
* 플랏: 한국의 빌라 같은 주거 형태
1년 전 이맘때쯤 남편이 집을 사자고 처음 말했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새 집을 생애 첫 집으로 살 경우 정부 보조금 혜택을 받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오호 정말? 그러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첫째 딸이 학교를 옮겨야 하는 것만 받아들이면 도시 외곽에 작게나마 정원이 있는, 그것도 새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헬륨 풍선이 가슴에 들어왔다. 마냥 들떴다. 요리가 저절로 하고 싶어질 주방, 볼일을 봐도 언제나 쾌적할 화장실, 바비큐 파티가 가능한 정원, 내 마음대로 짜 넣을 수 있는 옵션들, 우리 가족이 맨 처음 사용하게 될 집 안의 모든 것들! 새 집 만세!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다. 정보를 검색하고 집 보기를 예약했다. 주말마다 짬을 내서 여러 새 단지의 모델하우스를 보러 다녔다. 대개 단독 주택이거나 두 채씩 붙어 있는 형태의 2층 집들이었다. 입주가 시작된 지 모두 얼마 안 된 터라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완공이 거의 끝난 집이 반이었고, 집을 더 짓기 위해 공터 한쪽에서 부지를 다진다고 땅을 파고 있었다. 이 집이 좋을까? 아님 저 집? 여긴 너무 비싸고 저긴 좀 작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집을 보러 다니면 다닐수록 새 집이 달라졌다. 아니, 새 집을 보는 내 시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거다.
한 단지에 비슷한 분위기의 외관을 하고 서 있는 새 집들이 처음엔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개성이 없어 보였다. 같은 성형외과에서 같은 시술을 하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옛날 지어진 집에 비해 방도 작고 정원도 좁았다. 또 집끼리 바짝 붙어 있는 탓에 정원에 서면 다른 집들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웃은 어떤 사람들이 올지, 모두 함께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좋을는지 나쁠는지....... 물론 시선이 바뀌었어도 새집을 향한 로망은 쉽게 버리지 못했다.
올드 타운에 오래된 집도 보러 갔다.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이미 집 보기를 예약해놔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그리고 이 집을 만났다. 방 세 개짜리 집이었다. 67년이 되었다는데 실내 내부는 깔끔했다. 집주인이 벽 페인트도 새로 칠했고 카펫도 한 달 전에 바꾸어 놨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무엇보다 키가 아주 큰 나무들로 둘러 싸여 있는 넓은 정원에 남편과 나는 마음을 홀랑 빼앗기고 말았다. 새 집을 고집하면 이렇게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을 사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의 예산 범위를 훌쩍 뛰어 넘을 테니까.
남편과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오히려 넓은 집(마당이라도)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 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보통 큰 집에서 사는 건 나이가 지긋해질 때쯤인 경우가 많다. 그땐 아이들이 다 커서 집보다는 친구, 밖이 더 좋을 나이가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현실에선 안 될 줄 알았다. 이 집을 사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망설인 끝에 선택했다. 정부 혜택을 포기했다. 그래도 될 만큼 가격이 착했다. 새 부엌과 깔끔한 화장실은 '안녕~'하고 사라졌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에게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새 집도 분명 좋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새 집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래된 집은 그것만의 장점이 따로 있으니까. 내 경우엔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친절한 이웃들이 가장 좋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사는 이들도 많다. 가족, 친척이 마을에 함께 살기도 한다. 주민들 간에 커뮤니티가 발달해 있다. 속 깊은 곳까지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들은 기꺼이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특히 옆집 사는 데이비드와 마가렛!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때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직접 짠 목도리 같은 걸 선물해주는 마음 따뜻한 이웃이다.
동네 집집마다 혹은 놀이터, 주변 공원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어딜 가도 초록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또 집주인의 취향대로 예쁘게 꾸며 놓은 정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 집 단지는 이제 막 심은 가녀린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들도 몇 년 후, 몇십 년 후가 되면 아름드리 팔을 뻗을 것이다. 내가 새 집을 보고 개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 집들이 아직 주인의 취향과 생각을 반영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지나면 새 집들도 주인에 따라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로 거듭날 것이다.
사실 영국에서 67년 된 집은 오래된 집 축에도 못 낀다. 에든버러만 해도 1890년대부터 1910년 사이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100년 넘은 돌집들이 수두룩하다. 200년, 300년 집도 있다. 이런 돌집은 검게 그을린 곳도 많아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오래된 걸 좋아한다. 집이 오래되었다면 원하는 데로 바꾸고 손질하여 자신만의 특성을 덧댄다. 오래된 건 엔틱이고 빈티지다. 영국에서 도심 한가운데 100년 넘은 돌집에다가, 내부 구조는 현대식으로 싹 바꾸었으며, 정원이 넓은 집에 산다면 "얼~ 좀 사나 본 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비싸기도 하다.
67년 된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우리가 월세로 살던 플랏도 100년이 넘는 집이었다. 거실과 주방이 꽤 넓었고 햇볕도 잘 드는 집이었다. 천장이 높아서 전구를 갈려면 사다리가 필요했지만 고풍스러운 맛이 있었다. 각이 지고 큰 거실 창문을 바라보며 남편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밤은 언제나 감성이 넘쳐흘렀다. 아! 감정도 넘쳐흘러 영국살이가 힘겨울 땐 눈물바람이기도 했었다. 3층에 있는 플랏이라 정원이 없다는 것만 빼면 직접 사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가격이 비싸서 주인이 판다 해도 못 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100년 된 집에 살다 보면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어느 날 밤 거실 탁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데 거실 한가운데에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충격이었다. 살면서 쥐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쥐가 드나드는 구멍을 찾아서 막아야 한다는데 오래된 집은 구멍이 너무 많아서 애를 먹었다. 끈끈이와 각종 오일을 뿌리며 쥐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끈끈이로 쥐를 두 마리 잡고 나서도 몇 달 후, 용케 쥐구멍을 알아내 3중으로 막은 뒤에야 전쟁이 끝났다. 지인은 이런 건물 하나 허물면 백 년 넘게 일가를 이루고 살던 쥐들이 다른 건물로 대이동을 한다는 풍문이 있다고 했다. 방역 사업도 한국보다 활발하다.
비록 쥐와의 동침을 해야 할 지라도 나는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씩 버티고 서있는 영국 집들이, 오래된 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영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신기하고 부럽다.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게 옛 모습을 벗고 변신하는 서울의 모습은 이젠 낯설다. 중고등학교 때 내 활동무대였던 롯데월드와 잠실 주공단지에서의 추억은 초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결혼 전까지 살았던 친정집 주택가도 친정집 제외하고는 모두 빌라가 된 지 오래되었다. 부모님도 얼마 전 집을 팔고 분양받은 아파트로 가신다니까 그 집이 빌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조금 천천히 가도 좋으련만........
이사 온 지 8개월, 우리 가족은 저마다의 붓을 들고 우리 집에 고유한 색을 칠하고 있다. 그중 좀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정원에 조그마한 나무집(shed house)을 만드는 일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있었던 창고 두 채 말고는 정원에 별다른 게 없어 황량한 기운마저 감돌았었다. 그곳에 휴식과 놀이공간이 될 나무집을 세우기로 했다. 지금은 두 딸이 방을 함께 쓰고 하나는 안방, 또 하나는 서재로 만들어 남편이 사용한다. 아이들이 더 커서 각자의 공간이 필요할 때가 오면 남편 서재를 나무집으로 옮길지도 모르겠다. 두꺼비에게 새집을 주고 헌 집을 샀더니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완성된 모델을 보고 주문을 했다. 나무 자재가 도착했다. 단열재와 필요한 각종 공구도 샀다. 돈을 아끼느라 집을 올리는 건 나와 남편이 직접 하기로 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나무집 공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애 키우면서 일 하면서 짬날 때마다 하느라 언제 완성될지 아무도 모른다.
색칠의 원칙은 덧칠이라 정했다. 오랜 세월 다른 주인에게 길들여져 있던 집 위에 젯소 같은 거 바르지 않고 바로 우리의 색을 칠할 것이다. 3년이 안 되는 영국살이에서 새 것만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니까, 덧칠이 예상치 못했던 멋진 무늬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67년의 세월 위에 우리가 살아나갈 시간을 합해 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프면 고치고 필요하면 바꾸면서.
궁금하다. 이 집이 우리 가족의 이런저런 시도를 반기고는 있을까? 며칠 전 수도꼭지에 물이 세서 고쳐야 했던 걸 보면 조금 반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데 나를 닮아 까탈스러워져 그랬나? 70살을 바라보는 우리 집이 이왕이면 나 말고 예쁜 두 딸을 닮아 갔으면 좋겠다. ■
*정원, 뜰, 마당 모두 비슷한 단어입니다. 미국에서는 yard, 영국에서는 garden이라고 하는데 그 느낌을 살려 이 글에서는 정원으로 통일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