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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y 18. 2017

영국 중세시대 신발에 숨겨진 반전

에든버러 <글래드스톤즈 랜드>를  탐방하다가


자, 여기 17세기 영국 사람들이 실제 신었던 신발이 한 켤레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보자.  


나무와 가죽, 쇠로 된 오래된 신발 - 길게 세워진 막대기는 무시하시길


약 400년 전 신발이다 보니 오래되어서 연결 부분은 끊어지고 여기저기 낡았다. 사진에서는 재질을 느낄 수 없을 텐데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으며 발을 감싸는 부분은 가죽이다. 흔히 알고 있는 신발의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나? 밑창 아래에 쇠로 된 원형 틀이 붙어 있다는 것 말이다. 멋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기능이 있었던 걸까? 어째 나막신 같기도 하고 하이힐 같기도 한 이 신발은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글래드스톤즈 랜드>에 전시되어 있다. 오늘은 웃지 못할 반전이 숨어 있는 신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진으로 글의 문은 열었으니 잠시 <글래드스톤즈 랜드>를 소개자면 이곳은 중세시대 부유한 상인이었던 글래드스톤(Gladstone)의 집이었단다. 지금은 복원을 해놔서 박물관처럼 관광객을 맞이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심장 로열마일에 있다. 에든버러에 살 때는 심심하면 가곤 했는데 시골로 이사한 뒤로는 나도 맘먹고 가야 한다. 잿빛 중세시대의 건물이 많고 볼거리도 넘치는 곳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로열마일 -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인데 오~ 이 사진은 한가해 보여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로열마일 - 요샌 자주 못 가서 아쉽다



로열마일 한 복판에 글래드스톤의 집이 남아 있다. 위 사진에서 빨간색 차 뒤편으로 아치형 입구가 두 개 있는 건물이 그의 집이다. 이 건물은 1550년에 지어졌는데 글래드가 이 건물을 사서 이사 온 곳은 1617년이다. 비록 지금은 낡아 보이지만 400년 전에는 막 지어진 최신식 고급 건물이었겠지? 6층짜리가 모두 그의 소유였다는데 사업이 잘 안 되다 보니 각 층을 다른 계급의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Gladston's Land - 부엌


위의 네모난 상자는 변기통이다. 놀랍게도 글래드스톤의 집 부엌에 있었다. 나름 양변기 모양을 하고 있지만 나무 뚜껑을 열고 가운데 움푹 파인 대야(?)에다 볼일을 보면 되는 간단한 구조다. 일종의 요강 같은 것이랄까. 뚜껑을 덮어도 냄새가 멀리멀리 퍼지는 건 당연할 일. 볼일 보고 바로 처리하면 된다! 어떻게? 집이 아닌 다른 곳에다 버리면 되겠지. 창문 열고 밖으로 휙~! 그것도 1층, 2층, 3층, 4층, 5층, 6층에서 휙~! 박물관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데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중세시대 로열마일 거리를 상상했다. 길 가다가 똥 맞아도 그저 운이 나쁠 뿐, '마른하늘에 똥벼락'이었을 테다. 


그리하여 로열마일 온 길거리는 사람과 동물의 오물로 가득 차 냄새가 진동을 하고 온전히 걷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 시대 사람들은 땅에서 5-10cm는 족히 올라간 '철틀 나막신(내가 붙인 이름)'을 신고 다니며 가능한 한 배설물이 신발에 직접 닿는 부분을 최소화했한다. 그렇다. 사진 속 신발은 그런 용도였다. 똥 피하기 대작전용 기능성 나막신! 


실제 신발을 신고 다니면 무척 불편했다고 하는데 발바닥 전체로 온갖 오물을 짓이기며 밟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감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신발 밑창으로 느껴졌을 그 느낌 잘 아니까. 수세식 변기의 초기 모델을 발명한 것은 존 해링턴이라는 영국 사람이었단다. 그게 1596년 즈음이지만 1889년이 되어서야 오늘날 같은 양변기가 생겼다고 하니 깔끔하고 편한 배설물 처리의 역사는 겨우 120년 조금 넘은 셈이다. 


내가 '철틀 나막신'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신발은 본 명칭이 따로 있다. <Patten>이라고 하는데 영국을 포함해 유럽 곳곳에서 이른 중세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사용되었단다. 사람의 오물뿐 아니라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진흙 등을 피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래 원형 틀이 쇠로 되어 있는 까닭에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요란했었나 보다. 1390년 영국 요크 교구의 성직자들은 교회와 행열에서 이 신발 착용을 금지시키기도 했었다고 한다. 


    *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tten_(shoe)

    * 18세기 높은 pattens를 신고 있는 터키 여성 / 작가: Jean-Étienne Liotard (왼쪽)

    * 1720-30년대 pattens 한쌍  / 영국 런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오른쪽) 



항간에는 하이힐이 생겨난 배경도 이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유럽에서 긴 드레스가 발달한 것도 아무데서나 용변을 편하게 보기 위해서란 말도 있는데 뭐,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몇백 년 전 유럽은 생각보다 덜 깨끗했다는 것, 그 와중에 빛나는 아이디어로 철틀 나막신을 개발했다는 게 재미있을 따름이다. 인간의 삶에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배설과 뒤처리, 그것을 둘러싼 유럽의 역사 한 조각 이렇게 전하는 바이다.  






좀 살았던 장사꾼 글래드스톤네 집 둘러보기 


<글래드스톤즈 랜드>의 실내를 소개한다. 입장료에 비해 집이 작고 관람이 금세 끝나기 때문에 짧은 일정으로 에든버러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겠다. 대신 이 사진으로 감상하시길. 직접 봐도 이게 전부다.   


글래드스톤의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부엌을 둘러 볼 수 있다


16, 17세기 스코틀랜드의 부엌은 간단한 편이었다고 한다. 저 불 위에서 하인들은 커다란 냄비를 올리고 수프를 끓였겠지? 


 중세시대 아기들 보행기 - 그때도 이런 게 있있다니!


글래드스톤이 사용했던 방과 나무 천장


침대 위 금색 물건은 안에 뜨거운 숯을 넣고 이불을 덥히는 용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나름 화려했던 식당 
관광객을 위한 카페 - 커피를 조금 맛볼 수 있고 잼과 쿠키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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