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음 Nov 08. 202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노는 영국 초딩들

오징어 게임을 대하는 부모의 자세

엄마, 요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놀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집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었다. 어? 정말? 드라마 위력 한번 대단하네. 잠깐, 그 말인즉슨, 초딩들도 그 영화를 봤다는 얘긴가? 영국 애들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발음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여러 생각이 짬뽕이 될 무렵 딸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우리나라의 그 놀이를 하긴 하되 <오징에 게임>의 영어 자막에 소개된 것처럼 <그린 라이트, 레드 라이트>라 부른다고 했다. 술래가 서있다가 뒤를 돌아보며 레드 라이트!라고 외치면 아이들이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다. 움직여서 걸리면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아니란 얘기다. 움직이면 술래와 새끼손가락 걸고 기다려야 하는 조마조마함이 빠지다니! 어쩐지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놀이가 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국 문화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내가 어릴 때 신나게 하던 놀이 문화가 전 세계 곳곳에서 부활할 줄이야.


런던에 사는 지인이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아들이 우리 딸과 나이가 같은데 (만 9살) 어느 날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징어 게임>을 하고 노니 부모의 주의를 요한다고. 지인은 그 공문이 한국 문화가 마치 위험한 놀이처럼 왜곡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공문까지 보내게 만든 <오징어 게임>


"런던 학교에서 보냈다던 공문 이야기를 글로 써봐야겠어"


저녁을 먹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거 신중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 결론은 뭐라고 쓸 건데?"

"결론? 그저 팩트를 보여줄 건데?"

"그래도 그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황동혁 감독이 우리나라 옛 문화를 오염시켰다고 쓸 거야? 애들에게 드라마를 보여준 부모 잘못이라고 쓸 거야?"

"아직 주제만 잡고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는데. 흠... 감독이야 얼마든 그런 영화 만들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드라마를 안 봤다 해도 로블록스 같은 게임으로 접할 수도 있겠구나."


그날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현 세태를 반영하며 어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오징어 게임>, 그 속에서 전파되고 있는 한국 문화, 어느덧 영국 시골마을 아이들에게까지 퍼진 (조금은 모습을 달리 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런던의 초등학교에서 날아온 주의 요망 공문.


지인에게 다시 물어보았더니 공문에는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넷플릭스나 로블록스 같은 플랫폼에 접속할 때 부모의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부모들이 자녀가 온라인을 사용할 때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닐 텐데, 별도 가정통신문까지 보낸 걸 보면 <오징어 게임>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만은 사실이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버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예상하건데 게임을 하다가 졌을 때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다가도 쓰러지며 죽는 흉내를 하며 논다. 온라인 게임 속 세상은 더 하다. 마인크래프트만 하더라도 그 안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마구 죽이니까. 교장이 어떤 생각으로 공문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죽는 흉내를 내는 걸 봤을 때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으려 한다.  



결론을 향하여


며칠 뒤 딸아이가 속해 있는 스카우트 모임에서도 어른들의 지도하에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 놀이를 했다고 들었다. 활동 사진이 올라온 걸 보니 아이들 모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새끼손가락 거는 심장 쫄깃함이 없어도 아이들은 그저 뛰고 달리다 멈추는 활동을 좋아했다. 그때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가능한 놀이, 아이들의 신체를 발달시켜줄 놀이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제격이 아닌가! 이왕 이렇게 부활한 거 제대로 된 한국식 놀이 방법을 알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뒤 따랐다.   


그리하여 이 연사! 구독자수 많은 인기 유튜버들에게 외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국 버전을 제대로 알리는
영상 하나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눼?!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맞은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