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어느 날 숨쉬기 힘들고 온 몸이 저리며 어지럼증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죽나? 나는 죽지 않았고 증상은 30분 만에 잦아들었다. 몇 개월 뒤 그것이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우와, 드디어 나에게도 글 쓸 거리가 생겼구나!'
한국 사람 별로 없는 스코틀랜드에서 주부로 살다 보니 글로 엮을 소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오던 참이었다. 글은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하지? 바빠서 짬을 낼 여유가 없는 날도 많았지만 마음 한편엔 늘 뭔가를 써야 한다, 아니 쓰고 싶다는 바람이 가득 차올랐다. 그러던 중 찾아온 공황발작은 감사한 글감이 되어줄 터였다. 글을 쓰면서 증상이 나아졌다는 사람들의 후일담이 그런 생각에 더욱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의 목적으로 글쓰기를 하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실천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뒤이어 찾아온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졌기 때문이다. 가만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개미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 날이 이어지는데, 글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글.
소셜미디어에서 밝게 웃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쟤네들은 어떻게 저리도 의욕이 흘러넘쳐 보일까.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립감, 외로움, 생소함 이런 것들이 텅 빈 마음속에서 실타래처럼 뒤엉켜 나를 지배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한글 프로그램을 앞에 두고도 단 한 글자도 못 써넣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운동요법, 생활/식습관 교정에 인지행동치료까지 받고 나서 증상이 점점 나아졌다. 그러자 자판을 다시 두드릴 힘이 생겼다. 내가 겪은 일들을 기록해 놔야 할 것 같았다. 잘 살 고 있다가 어쩌자고 마흔 넘어 이 고생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같은 일이 일어나서 다시 엎어진다면 처음보다 쉽게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썼다. 쓰다가 생각했다. 돌아봤다. 내다보기도 했다. 마법이 일어났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흔히들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오장육부 쪽으로 눈길을 향하고 째려본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진짜 욕망이 무언지, 뭐가 문제였는지 확인하려면 단연코 글자의 도움이 최고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니 글이 써지더라.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노래처럼 불러온 지 12년 째다. 그동안 육아와 여러 가지 것에 치여 꿈으로만 담고 살았다. 하지만 공황 분투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틈틈이 쓰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브런치에도 올리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린다. 정리된 40편을 골라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았다. 2020년 7월, 2021년 5월 두 차례에 걸쳐서 시도했는데 모두 성공은 못했다.
계속 썼다.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썼다. 종이접기 수공예 작가로 사는 삶에 대해 썼다. 핸드메이드 사이트 엣시(Etsy)에서도 나와 같은 콘셉트로 종이접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이야기는 나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21년 7월 출판사에 또 투고를 했다. 세 번째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한 곳과 계약을 했다. 8월, 9월, 10월 내내 종이를 접으며 글을 썼다. 그리고 지난주 탈고를 하여 출판사에 보냈다.
이제와 돌아보니 공황 발작 후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맞았다. 그것은 나에게 글 쓸 거리를 안겨주었다. 반드시 글이 당장 나와야 하는 건 아니었다. 몇 개월 후 혹은 몇 년 후가 되어도 상관없다. 그때의 감정과 고통을 글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를 돌아볼 일도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나를 찾아왔던 공황에게 두 손 모아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또 하나, 계속 쓰다 보니 깨달은 사실. 그동안 쓸 거리가 없었던 게 아니라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무인도에 살아도 쓰려고만 마음먹고 머리를 굴리면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법인데. 이제 알았으니 쭈욱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