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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Dec 30. 2021

조앤 롤링은 되고 나는 안 되었던 것

계속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는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이 있다. 그가 실존인물이었나? 하는 착각은 하지 마시길. <엘리펀트 하우스>라는 카페가 바로 그곳인데 조앤 롤링이 거기서 <해리 포터>의 원고를 썼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카페 입구 옆 유리에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이라는 표지가 큼직하게 붙어 있는 덕분에 관광객들은 그걸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곤 한다.  


      

엘레펀트 카페 입구와 내부 전경


대체 그게 뭐라고!      


라고 하기에는 <해리 포터>가 너무 크게 성공했다. 1997년 롤링이 이 소설을 쓴 후 20년 사이에 8편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67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4억 5천만 부가 팔렸단다. 연 수입은 2,200억 원이 넘는단다. 자꾸 ‘억’, ‘억’ 거리니까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 감도 오질 않는다.    

  

조앤 롤링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첫 결혼에 실패하여 4개월 젖먹이 딸을 데리고 왔던 곳이 에든버러였다고. 돈벌이가 없어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야 했을 때 우울증 치료차 동생의 권유로 시작했던 글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소설가가 꿈이었다니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불투명한 미래에 혼자 애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힘으로 그런 상상력 터지는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사람 많은 카페에서 유모차를 옆에 두고 말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가끔은 내 이야기를 썼고 때때로 소설도 썼다. 하지만 쓰다가 자주 멈췄다. 그랬던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바빠서, 아파서, 배고파서, 배불러서, 노느라, 일하느라, 쉬느라, 자느라 혹은 그저 글 쓸 기분이 아니라서 안 썼다. 걱정거리라도 하나 생기면 크기를 한껏 부풀린 후 천천히 되씹어야 했기에 자판을 두드릴 힘조차 남겨 두질 않았다.    

    

조앤 롤링이 부러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던 의지, 시작한 글을 끝까지 마무리 하는 그녀의 끈기를 나도 갖고 싶었다. 롤링 뿐 아니라 책을 낸 작가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볼 수밖에 없는 건 (책 내용이 별로라 해도) 몇 만 자나 되는 글을 써낸 그들의 저력 때문이다. 오랜 시간, 그러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슬퍼했다. 나에게 묻기도 했다. 정말 글이 쓰고 싶은 거 맞니?     

 

몇 년이 흘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자주 쓰다 멈추었던 내가 최근 2년은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써도, 써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솟구쳤다. 불현 듯 찾아온 불안장애와 공황장애에 관해서도, 난생 처음 해보는 스몰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쏟아졌다. 완성해 놓은 글을 보면 대부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잘 썼는지 못 썼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나답지 않게 꾸준히 썼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제야 깨닫는다. 글쓰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만 있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러니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쓸 수밖에 없는 때가 온다는 것을. 글이 먼저가 아니었다. 내 안의 내용이 먼저였다. 그것만 꽉 차 있다면 표출해 내는 수단이 꼭 글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 그림이나 음악 등은 젬병이라 글을 썼을 뿐이다. 


어쩌면 조앤 롤링도 그 당시 “아, 짱나, 되는 것도 하나도 없고 글이나 써야지”라고 결심했던 것이 아니라, 어린이 마법사를 둘러싼 방대한 이야기가 이미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글자로 내 뱉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그저 돈을 벌려는 목적만 있었다면 (써 낸다고 다 대박치는 것은 아니니까) 조급증만 생기고 끝을 못 내지 않았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다. 몇 십 년 뒤, 글 쓰는 할머니가 되면 정말 멋질 것 같다. 그러나 글 자체에 목적을 두지는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안 써진다고, 쓸게 없다고 조급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내 안의 내용을 채울 것이다. 바르고 멋진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땅의 여성과 미래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사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비전에 걸맞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 그것이 열매를 맺고 무르익는다면 잘 흔든 샴페인 병뚜껑 열리듯 “뻥!”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글로 터져 나올 날이올 것을 믿기에.    

           



* 몇 달 전 <엘리펀트 하우스>에 불이 났다. 조앤 롤링이 심어놓은 글쓰기 기운까지 사라졌을까 봐 마음 한 구석이 허했다. 얼마 전에 갔을 때는 아직 바리케이트를 쳐 놓은 상태였다. 얼른 복원이 되기를 바란다.  


* 영글음의 인스타그램: @writer_you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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