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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다방

누가 인간의 자격을 빼앗았나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by 영글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음습한 기운이 '스르르' 불어와요. 이토록 염세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고요. 대개 한 권을 완독하면 뿌듯함이 먼저잖아요? 근데 일본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 실격>은 달랐어요.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거든요. 누군가의 인생 밑바닥을 구경하는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는 않은 까닭이겠지요. 주인공의 삶이 무척 안타깝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화도 나요.


"대체 왜 이렇게 산 건데!" 하고 따져 묻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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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름은 '요조'예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이런저런 연유로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 보지도 못하고요. 여자를 만나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여자만 죽고 요조는 살아나요. 그 후에도 알코올, 약물 중독의 과정을 거쳐 결국 정신병원에도 갇힙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자기 파괴적인 인간이에요.


놀라운 건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요조의 삶이 여러 면에서 겹친다는 점과 출간 당시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덕분에 작가는 상도 타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어두운 소설을 사람들은 왜 찾았을까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겠죠.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사회에 만연해 있었을 허무주의, 허망함 속에서 그 극한을 보여준 요조에게 깊이 동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죠. 인간 실격. 누가 인간에게서 자격을 빼앗을 수 있을까요? 설마 신? 책을 읽으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뒤에 붙은 작품 해설에 따르면 작가가 정신 병원에 입원한 후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 즉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상태의 자기 인식인 것이지요.


그게 만약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인간도 아니다." 이런 자기반성의 성격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요조는 정신병원에 자기를 가둔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뒤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자기혐오를 하게 되죠. 결국 상황을 그렇게 몰아간 건 요조 자신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역사적 상황으로 이해하려 해도 사실은 이해가 쉽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아직 제가 소설 뒤편의 깊은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란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마흔 넘어 세계명작에 관심 갖게 된 어느 주부의 고백이니 어여삐 봐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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