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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23. 2022

부부 세계여행 그 후 17년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2005년, 남편과 저는 6개월 간 세계여행을 떠났어요. 

대부분의 시간은 칠레, 볼리비아, 멕시코 등의 중남미에서 보냈고, 

유럽 4곳과 미국 4곳, 캐나다, 일본 등을 다녀왔지요.

여행을 위해 둘 다 퇴사를 해야 했고요.  


그때가 스물아홉 살이었네요. 

다녀온 직후에는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폴락거렸어요. 

언제든 또 떠날 거라 생각했고, 그럴 수 있다고 장담했죠. 


그러다가 1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랜 시간 여행을 꿈꾸며 살았지만 

더 이상의 세계여행은 아직 못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여행보다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하고요.  


가끔 브런치에서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의 이야기를 

쓰신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요. 

많은 분들이 하는 말이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어도

절대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그러면 저는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인생은 

세계여행 후로 참 많이 바뀌었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구 반대편에도 정말 사람이 살고, 나라가 있을까? 

TV에서 보던 세상은 다 가짜가 아닐까?


왜 있잖아요. 

영화 <트루먼쇼>처럼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얇은 막이 찢어지고 그 세계 바깥엔 텅 빈 공간이 나타나는 거요. 

아니더라고요. ^^ 


칠레 사막도시 - 산뻬드로 데 아타카마


제 삶 역시 여행 자체로 인해 무언가 확 바뀐 건 아니었지만 

여러 나라에 발을 딛으며 사람을 만나고 공부하면서 

좀 더 큰 세상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남편 역시 그랬기에 돌아온 후 대학원에 갔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했고 저 또한 흔쾌히 따라가게 되었지요. 

하필 그 후에 잡은 직장이 영국에 있는 바람에 

이젠 유럽에 살고 있네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오자고 약속하면서 

세계여행할 때는 중심에 두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말이죠. 


아마 그때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제 삶이 이렇게 펼쳐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국에서 사는 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고루고루 섞여있지요. 



브라질 아마존 투어 중 만난 가족 - 그들은 물 위의 나무집에 살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면서 둘만의 목표를 정했었어요.  

세상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읽고 오겠다는 당찬 포부였죠. 

여행의 이름은 <인터뷰 트래블>.


비록 당시의 영어와 스페인어가 부족해 

목적을 오롯이 채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왔답니다. 


베네수엘라 아이들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수도 까라까스에서 

<볼리바리안 혁명>이라는 독립영화를 찍은 

마르셀로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가 살고 있던 빈민촌에서 함께 머물렀던 순간들이 있었고요. 


칠레에서는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수업 참관을 하여 

칠레의 교육 시스템을 배웠어요.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친구 루이스네 방문했다가 

동태전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요.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석양은 브라질 아마존에서였답니다.  

가장 더웠던 곳은 지구의 적도 부근에 있는 

시우다드 볼리바르라는 도시였어요.  


멕시코시티 소깔로 광장


멕시코에서는 화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되었고 

칠레에서는 네루다라는 시인을 접했지요.  


볼리비아에서는 음식 먹고 배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도 했었네요. 

그 후 교민 중 한 분이었던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자원봉사에 참가한 적도 있어요. 


이 모든 경험이 30대를 넘어 40대를 건너고 있는 저에게는  

아직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동의해요. 

근데 그게 꼭 모두 알아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세계여행은 사실 잘 모르고 무작정 갔었어요. 

하면서 공부하고 깨닫고 그랬지요.

 

그러니까 뭐가 다 갖춰진 상태가 아니라 해도 

시작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어요. 

떠나지 않았다면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었으니까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해도 

알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6개월 간의 세계여행이 제게 남겨준 건 

도전 정신이었어요. 

간이 콩알만해서 평소 일탈은 꿈도 못 꾸던 저였는데 

간 큰 남자를 만나 세상을 돌아보게 되었네요.

결혼할 때 대출받았던 전세자금을 

갚으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말이죠.  


할 수 있을까? 다녀와도 좋을까? 

설렘과 불안을 하나의 보따리에 싸들고 떠난 길 위에서 

'일상에서 벗어나도 괜찮아', 

'늦게 가도 괜찮아'

이런 속삭임을 들은 것 같았어요. 


그 속삭임의 꼬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덕분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질 때에도 

그때의 여행을 떠올리며 찬찬히 가려 노력합니다. 


한때는 저도 목적지를 잃을까 봐 안달복달할 때가 있었는데요, 

마흔 중반의 지금은 

잠시 길을 잃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찾아 나서면 되니까요.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삶인 것 같기도 하고요. 


떠남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게 꼭 여행이 아니어도 좋아요. 

이를 테면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 같은 것도요.)

살짝 등을 떠밀어 드리고 싶어요.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니 쉽게 말하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적당한 때란 

그 마음이 들 때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란 놈은 

준비가 되길 기다리거나 

상황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더라고요.




글 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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