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도 갈대는 꺾이지 않으니까
몇 달 전 브런치에 <영원한 이방인? 나는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나도 안다. 32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남편 따라 미국에서 5년을 거쳐 영국 살이 4년 차에 막 접어든 내가 그걸 거부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의지를 담은 표현이었다. 이방인으로만 어물쩍 머물지 않게 뭐라도 해보겠다는. 생각해 보면 그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거나, 오늘 하루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종류의 공허한 외침이었다. 소리치기만 해도 이루어진다면 나는 애초에 백만장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새로운 영국 사람과 만나면 대개 이 질문을 받곤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주부”라고 대답하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난 영국 여자들은 오로지 주부이기만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아이를 키우느라 전일 근무를 할 수 없어도 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게 가능한 사회였다. 그녀들은 일하지 않는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어느 한국 회사 블로그에 가끔씩 글 올리는 것을 크게 부풀려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를 뺀 채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영국 사회에 발붙인 곳이 없다는 건 이방인 중에서도 가장 아래 단계에 속하는 조건이다.
영어에 관해서는 여전히 일희일비를 반복 중이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의사를 만나 아픈 곳을 호소하며 아마존 반품을 신청하거나 아이들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는 일은 잘할 수 있다. 친한 영국 엄마 둘셋과의 수다도 제법 즐길 줄 알게 됐다. 문제는 예닐곱 명의 엄마들이 모여 밤에 와인 한 잔이라도 하는 때인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미사일의 속도로 날아왔다가 튕겨가는 영어 대화를 낚아채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유머 코드를 이해하는 건 허허, 동네 뒷산에나 겨우 올라가는 실력으로 히말라야 산을 타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리액션하는 내 목소리와 동작이 크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자리를 갖는 게 소중해 열심히 만난다. 가끔 우리 집에도 초대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남편과 나는 그럴 때 강인하게 버티는 힘을 <보릿자루 정신!>이라 명명했다.
가을이 왔길래 책을 몇 권 읽었다. 그중 하나는 <나라는 여자>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한국에 있는 선배가 1년 전에 보내준 책이었다. 작가는 칼럼니스트 임경선. 나는 그녀를 잘 모르지만 TV에도 몇 번 나오고 연애 상담 같은 걸 했던 모양이다. 책장에 묵혀만 두고 있었는데 이번엔 단숨에 읽어버렸다. 삶과 사랑, 일에 대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 우와, 이렇게 솔직할 수가! 소감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솔직 담백"보다는 "솔직 대범"에 가까웠다. 남의 이목을 늘 신경 쓰는 나는 따라 하기 힘든 솔직함이었다. 그중 생각을 붙잡아둔 구절이 있었으니...
"아웃사이더라면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거기서 벗어나 인사이더가 되려고, 소속감을 느끼려고 할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남는 것에 불편함을 못 느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방식이 나에게 이미 스며들어버렸다. (p 142)"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자란 작가는 아웃사이더로 남는 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어린 시절 몇 년에 한 번씩 나라를 옮겨 다니느라 인사이더가 될 기회가 없어서였을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게 익숙하다니.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부러웠다. 작가가 이런 삶의 태도를 갖기까지 겪어야 했던 경험치들 어쩌면 그 속에서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에잇, 그건 모르겠다. 결과론적으로 쿨해 보이는 그녀의 태도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부득부득 인사이더가 되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겹쳐져 조금 찌질해 보였다. 하지만 노력한다 해도 작가처럼 쿨하게 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아는 "나라는 여자"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이게 있어'라고 할 만한 무엇이 없을 때, 그때는 보편적인 위로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대신 주변 잡음을 차단하고 나의 단단함과 일관성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고 쌓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기실 자존감을 높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가짐이라기보다 매우 구체적인 지침이었다. (p 239)"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할 때도 때가 있듯이 독자가 책을 만나는 것도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이 문장이 강하게 마음을 때린 것도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이리라. 지금 나에겐 나의 단단함과 일관성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쏙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상적인 마음가짐 말고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할 때이다. 매일 해야 하는 행동강령 같은 것을 정해볼까?
옆집의 옆 옆 옆집이 앞마당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공사를 하면서 식물 몇 개를 뽑아 버린 적이 있었다. 그걸 놓치지 않고 허락을 받아 우리 집 앞마당에 데려와 심었다. 벌써 4개월 전 일인가.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와 갈대였는데 몇 주 만에 푸른색이 바래고 시들시들해져서 죽었구나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보니 갈대에서 새 갈잎이 14개나 돋아나고 있었다. 신통한 녀석들!
요 며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시속 27마일의 강풍에 마당 테이블에 얹어 놓은 화분들이 떨어져 개박살이 났다. 쓰레기 수거 날이라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통들이 바람 때문에 쓰러져서 도로를 점령했다. 길을 걸으면 뒷머리가 눈 앞에 와 붙었고, 보이지 않는 심령체가 나를 밀고 있다 느낄 정도로 센 바람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갈대 새내기들은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꺾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릴 뿐, 연약해 보이는 갈잎은 휘청휘청하다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아, 이쯤에서 나는 갈대 이야기를 꺼낸 처음 의도 데로 '흔들릴 수는 있되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살아야겠다...'라고 써야 할 텐데 풋, 꼭 동화책에나 나오는 결론인 것 같아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실 어떤 식물도 웬만해서는 강한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세상 모든 식물처럼 살아야겠다고 하기도 우습고, 꼭 뭐처럼 살아야 할 필요도 없고. 이런 추상적인 마음가짐 말고 뭔가 구체적인 지침이 없을까. 하루 몇 시간 영어 공부? 언젠간 영국 맘들과 자유자재로 이야기하며 와인 몇 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순간을 꿈꾸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워낙 시간이 드는 문제란 말이다.
영어 외에 나를 단단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오른팔을 머리 위로 뻗는다.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왼팔을 어깨 위에서 두 바퀴 돌린다. 차리리 이방인으로, 아웃사이더로 사는 걸 연습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오른발, 왼발이 번갈아 가며 바닥을 치고 빠진다. 나, 젊을 때 잘 나갔는데. 허리가 상체와 이탈하여 웨이브를 만든다. 중고딩 때 수업이 지겨우면 애들이 내 이름을 외치며 노래 부르고 놀자고 환호했는데. 머리를 팔 방향과 반대로 흔든다. 호흡이 가빠진다. 나는 춤을 춘다.
목과 등이 뻐근해 시작한 아줌마 춤에 남편은 유튜브에서 80년대 팝송을 찾아 튼다. A-Ha의 <Take on me>에 맞춰 상체와 하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지금 내가 선 곳은 어디인가. 한 바퀴 돌고 제 자리,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 시선 주고. 언제 40년이나 살았나. 양 어깨를 앞으로 숙여 흔들었다가 뒤로 한 번 더 반복. 심장이 뛴다. 눈빛은 고혹하게, 표정은 섹시하게. 뱃살이 흔들린다. 거울 앞에 선다. 계속 춤을 춘다. 허벅지 살이 많이 붙었지만 춤추는 모양새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기분이 업된다.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헛둘 헛둘.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거 영어보단 춤이 낫지 않을까? 영국 엄마들에게 한국 엄마의 춤을 선보일까? 몸의 움직임이 정신을 점령하니 허허 참 결론도 없는 생각이 함께 춤을 춘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그날, 마흔의 난리부르스는 계속되었고 나는 뜻하지 않게 갈대처럼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