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란
처음부터 착한 딸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결혼 전 나는 자유분방했고 엄마도 내 삶에는 간섭하지 않는 편이었다. 엄마와 의견이 부딪힐 때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맞받아쳤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탓에 그렇게 부딪힐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결혼하여 30대 중반으로 치닫던 어느 날 동생과 엄마와 내가 숯불갈비 집에 가서 고기를 함께 구워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정확히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와 생각이 다른 지점에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의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그랬는데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여셨다.
"....... 원래 착하던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슬퍼...... "
충격이었다. 엄마는 말썽 부리는 둘째 딸(동생)이 뭐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지만 내가 그러면 너무 서운하다고 했다. 내가 착한 딸이었나? 엄마가 언제부터 약해졌지? 여러 생각들이 짬뽕이 되면서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게 생겼다. 갑자기 나쁜 딸이 된 것 같았다. 정확히 그날부터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뭐라고 하면 슬퍼하는 우리 엄마.
미국으로 떠나게 되자 엄마를 볼 날은 몇 년에 한 번씩으로 줄었다. 어차피 해외에 나가 얼굴도 잘 못 보는데 만날 때만큼은 착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일 같았다. 아니, 솔직히 엄마 말을 듣는 척하는 게 오히려 숴웠다. 일일이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왜 그래 하는지 설득하며 싸우는 것도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이래라 해도 "네", 저래라 해도 "네" 하는 게 편했다. 그러다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될 일이므로.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나올 줄 몰랐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만이 옳고 나머지는 타 틀리다는 식이다. 살아온 세월에서 터득한 것이 지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쨀 땐 철 지난 유행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걸 모른다. 몇 년에 잠깐씩 얼굴을 보게 되서일까. 한국 갈 때마다 작정하고 퍼붓는다.
"남이면 이런 말 못 해. 엄마니까 해주는 거야."
이렇게 시작하는 충고는 나의 가치관과는 전부 맞지 않는 말들이다. 이제 자신에게 딱 둘밖에 없는 손녀들에게까지로 범위를 넓혔다. 보라(우리 집 첫째)는 걸음걸이가 구부정한 게 계속 그러면 척추가 휠 것이다, 연두 (둘째)는 엎드려서 휴대폰을 많이 하더니 어깨가 올라가서 목이 짧아지지 않았니, 상체까지 비만이라 안 이쁘다, 애 둘 다 말도 없고 사회성도 없다, 한국말 발음도 못한다, 이게 다 엄마인 네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이다, 잔소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올여름 한국에서 3주간 엄마네 있을 때 영국으로 돌아오기 1주일 전에 들었던 말이다. 하마터면 폭발할 뻔했다. 착한 딸이고 뭐고 그대로 소리 한 번 지르고 짐 싸서 나가고 싶었다. 애 척추가 휘든 말든, 목이 짧든 말든 내 딸이니 알아서 키우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래 버리면, 정말 그래 버리면 우리가 가버린 다음에 엄마가 감당해야 할 감정들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제 아빠도 떠나고 안 계신데 엄마에게 자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딸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어차피 나는 떠나면 그만이어서....... 나 편하자고 선택했던 삶의 태도가 이제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음을 깨달았다.
관계는 어렵다. 엄마와 딸의 관계도 그중 하나다. 아마 나는 한동안 착한 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련법을 터득했다. 앞에서는 "네" 하고 뒤에서는 내 맘대로, 나의 인생 철학데로 살면 그만이다. 착한 딸 콤플렉스도 여러 모습일 텐데 내 경우엔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그것이 엄마의 남은 생을 편하게 한다면 그럴 작정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진정한 나? 내가 살고자 하는 나의 모습? 엄마 모르게 잘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