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입에 넣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김밥을 싼다. 쌀 때마다 중얼거린다.
"스코틀랜드에도 김밥천국이 있었으면!"
그러면 내 세상도 천국일 텐데. 없어서 직접 싼다. 투덜거리며 싼다. 그래도 딸 입에 들어가는 거라 마다하지 않고 싼다. 이때만큼은 어쩐지 좋은 엄마 대열에 낀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며 힘차게 말아댄다.
수요일 저녁마다 딸(만 16세)은 플루트를 들고 오케스트라 모임에 참석한다. 시간이 6시부터 8시까지다. 집에서 5시 반에는 나가야 하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되게 애매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김밥이다. 돌돌 말아 쿠킹포일에 싸주면 내가 운전하는 동안 딸은 차 안에서 한 알씩 김밥을 까먹는다.
운전하면서 듣는 오물오물 딸 김밥 씹는 소리가 좋다. 평소에 채소라고는 눈길도 주지 않는 데다가 입맛이 서구화된 녀석이 김밥을 먹을 때만큼은 당근, 오이 심지어 김치까지 가라지 않고 한입에 넣는다는 사실에 소리마저 예쁘게 들리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 모임 <팀라이트>에서 함께 활동하는 알레 작가님이 물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싸는 김밥은 좀 다를 것 같아요."
"한국 김밥이랑 비슷해요."
"정말 같아요? 재료가 다 있어요?"
"그럼요, 보여 드려요? 조금 다른 것도 있긴 하네요."
당근은 채 썰어 기름에 볶는다. 당근 속 비타민 A가 기름과 만나면 체내 흡수율이 높아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여간 볶은 영국 당근은 진짜 맛있다. (영국 식재료 중 당근만 맛있는 것 같기도... -_-)
아삭함이 좋아 시금치보다는 오이를 선호한다. 예전엔 소금 뿌려 절인 뒤 꼭 짜서 싸곤 했는데 매주 싸려면 모두 사치다. 그냥 채 썬다. 계란은 계란말이를 만들어 도톰하게 썬다.
스코틀랜드에는 한국 마트가 없기 때문에 단무지 같은 건 중국 마트에 가거나 런던에서 온라인으로 시켜야 한다. 가끔은 중국 마트에도 안 들어오거나 똑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 초절임을 직접 만들어서 써야 한다. 오늘은 무 초절임과 중국 단무지의 합동 작전을 펼쳤다.
김은 일본 김 중 가장 싼 걸 쓴다. 김치는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포기김치가 있으면 좋지만 막김치도 포개 얹으면 오케이다. 햄은 슬라이스 되어 있는 것으로 아무 거나 사되 볶을 시간 같은 건 없다. 그냥 쓴다. 이 짓을... 매주마다 하고 있다.
집안일 중 요리가 가장 싫다. 젊은 시절 언젠가는 좋아했던 적이 있던 것도 같은데 결혼 후 미국에 가면서 바뀌게 되었다. 내가 밥상을 안 차리면 우리 가족이 모두 손가락 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누르며 "밥해 밥해!"를 외치는 것 같아 요리가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하지만 좋고 싫음을 떠나 음식을 곧잘 하는 편이다. 미국, 영국에 살면서 원하지 않아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손도 빠르다. 이래 봬도 영양사 출신(비록 1년 반만 하고 그만두었지만)에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있는 몸이다, 라기보다는 역시 수없이 해본 덕분이다.
싫은 일도 오래 반복하면 잘하게 되는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싫든 좋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즐겁지만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글 쓰기가 아무리 좋아도 과정은 늘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가장 어려운 "꾸준함". 그 어려운 일을 매주마다 (샌드위치로 바꾸지도 않고) 하고 있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이 글은 "나도 김밥 이야기를 쓰면 브런치 메인에 뜰까?"
하는 호기심으로 쓴 글입니다.
다음 날 결과를 확인한 후 후속 글을 올렸어요.
브런치팀에게 고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songyiahn/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