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팀에게 고함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브런치가 아무리 음식 소재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무작정 메인에 오를지 궁금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김밥을 말다 보니 실험정신이 발휘되었다. <팀라이트>의 알레 작가님이 등 떠민 것도 한 몫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김밥 싸는 법을 저에게 알려준다 생각하시고 그냥 써보세요."
'남들 다 하는 건 나만 안 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메인에 오르면 좋지 아니한가?' 하는 마음을 올려놓고 저울질하다가 후자가 이겼다. 하필 어제가 김밥을 싸는 날이었고, 시간 여유가 있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럴듯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국에 사니까 글을 발행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김밥 글은 다음 첫 화면에 올라 조회수 8,00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뭐야, 진짜 메인에 뜨는 거야?! (브런치 대신 다음이었지만) 오늘 하루 동안 14,000명이 넘는 방문자가 김밥 글에 다녀갔다. 읽지 않고 사진만 넘겨보다가 나간 사람도 제법 있긴 할 것이다.
<팀라이트> 소속 브런치 작가들과 지난 몇 주간 <한 달 동안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일단 라면을 끓여요. 클로즈업하여 사진을 왕만하게 찍어요. 그걸 메인 사진으로 걸고 글을 쓰는 거예요. 거기에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 아내, 아들, 딸 곁들이면 금상첨화죠. 예를 들면 이런? 시어머니가 끓여준 라면 먹다가 고부 갈등 생겨 남편과 대판 싸웠다. 조회수 10만 보장 꿀 핵 소재 방출!
우리는 낄낄거리며 "맞아 맞아"를 반복했다. 그 말이 진짜인 것 같다. 브런치에 하도 김밥 사진이 자주 보이길래 시도해 본 어제의 글이 "그게 진짜"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방문자가 늘고 댓글이 달리니 기분은 좋다. 근데 마음 한 구석에서 다른 목소리가 자꾸 말을 건다.
며칠 전 컴퓨터로 브런치에 들어갔다가 메인 화면에서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옆으로 넘겨도 넘겨도 음식 사진만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브런치, 요리책 된 줄 알았다. 새로고침을 누르면 화면이 바뀔 것이므로 일단 저장을 해 두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해 보시길.
물론 매번 음식 사진만 나오진 않는다.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다음 메인 화면 <홈&쿠킹> 코너에 브런치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간다. 음식, 가족 이야기 나도 무지 좋아한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는 다른 소재의 글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글도 읽고 싶다. 브런치를 알게 된 2015년부터 이곳은 긴 호흡의 글도 통하는 플랫폼이었으므로 좀 더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브런치를 통해 퍼스널 브랜딩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조회수, 구독자수, 좋아요수 하나가 아쉬울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어쩔 땐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브런치가 좋아하는 글을 발행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독자가 원하는 글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뒤집어쓰고.
김밥 글도 전혀 쓰고 싶은 글은 아니었다. 그런데 썼다. 실험정신 어쩌고 운운해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메인에 뜨면 방문자, 구독자가 늘겠지? 하는 기대감이 나라고 왜 없었겠나.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글만 쓰며 가기에는 줏대가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두렵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뒷전으로 하고 그 대신 브런치에게 잘 보이려고 애정 공세만 펼칠까 봐 두렵다. 글을 쓰는 이유를 망각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노를 저을까 봐 두렵다. 그러다가 글 쓰기에 질리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매일 글 쓰는 이유를 되뇌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발 붙여온 브런치. 이곳이 한정된 소재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거리낌 없이 써 내려가도 메인에 자주 올라가 더 많은 작가들이 "쓰는 기쁨"을 알아가는 곳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