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가끔 나의 오래된 영정 사진을 바라본다. 웰다잉(잘 죽는 것)이 트렌드가 되면서 영정 사진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이건 내 장례식 때 써야 했기에 엄마가 급하게 인화한 사진이다.
1992년 어느 날, 병원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던 나를 두고 의사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 혼자 나온 사진을 찾다 보니 고등학교 입학식의 한 순간이 졸지에 영정 사진이 되어 버렸다.
그 안에서 나는 축하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있다. 영정 사진 속 아이는 열다섯 앳된 얼굴로 사진 밖의, 나이 든 나를 쳐다본다. 어쩐지 처연한 표정이다. 아픈 아이라 그랬을 것이다. 입은 앙 다물고 있지만 가만 보고 있으면 지금의 나에게 마치 말을 거는 것 같다. 어머 너, 마흔 넘어서까지 살아 있는 거야?
응. 다행히 잘 늙어가고 있네. 너도, 잘 있었니?
중3 끝 무렵부터 감기증상이 낫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다니다가 차도가 없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주일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나를 조퇴시키고 큰 종합병원에 데려갔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이를 학교에 보내시면 어떡합니까."
그날로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이면 될 줄 알았기에 처음에는 인턴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장난을 치거나 수학 문제를 물어가며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병명을 알아내지 못한 채 복수가 차는 등 증상이 심해지자 휴학을 해야 했다. 그 후 3개월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무척 더디게 흐른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다가 30분은 지났나? 하며 시계를 확인하면 3분도 채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불편하고 아픈 몸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밤은 매일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신장이 망가졌다. 급성 신부전증이라 투석을 해야 했다. 기계로 내 몸의 피를 빼내서 깨끗이 만든 후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그제야 병명을 알아냈다. 전신성 홍반성 낭창. 영어로는 루푸스. 자가면역질환으로 면역체계가 고장나 생긴 병이라고 했다. 어떤 약과 치료법을 써도 낫지 않자 어느 날 의사가 그 말을 남긴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의사들의 예상을 뒤엎고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마지막으로 했던 투석 이후 상태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었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영정 사진은 장례식용으로 인화는 되었으나 쓰임새를 다하지 못하고 앨범 속에 들어가 30년째 함께 하고 있다.
퇴원하고 이듬해에 고1로 복학했다. 학생주임 몰래 앞머리를 파마하고 등교할 땐 실핀으로 찔러 숨기는 대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학도 가고 결혼하여 아이도 키우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다. 평생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나는 살아 있다.
며칠 전 집안 청소를 하며 우연히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영정 사진과 마주쳤다. 너는 참 표정이 별로구나. 못 생겼다, 못 생겼어. 문득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 인생이 고1에서 끝났더라면 그런 우울한 표정을 지닌 얼굴이 나의 마지막이 될 뻔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최근 계획했던 일 몇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아 한참 괴로워하던 중이었는데 그 마음이 작아지는 소리였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그까짓 일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죽다가 살아난 경험을 해본 이라면 다시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아니다. 자주 잊는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 말도 못 하게 값진 일이라는 것을 번번이 깨닫지 못한다. 주문하면 당연히 오는 택배상자처럼.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낭비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함부로 써버릴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열다섯 이후 살아온 모든 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는데.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故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앞으로 더 자주 영정 사진을 들여다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진 속 사춘기의 내가 갱년기를 앞둔 나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딱 한 마디면 된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우주보다 더 큰 선물이라는 것
그 한마디만 되새기게 해주면 충분할 것 같다. 살아 있어서 좋다. 표정이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품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