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반에 눈을 떴다. 아래층에서 지이잉-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커피를 내리는 소리다. 암막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 놓인 방안 풍경이 낯설다. 지금은 꿈이 아니겠지?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침대 옆에 주저앉아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지난밤, 아니 방금 전까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에 돌아가신 아빠가 꿈에 나왔다. 드라마를 보면 세상을 떠난 사람을 꿈에서 만나면 구름이나 안개 같이 몽환적인 배경에서 나오던데 우리 아빠는 검은 어둠 속에서 등장했다. 드라마에서는 또 보고 싶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 가지 말라 등의 대사로 절절함을 표현하던데 내 꿈속에서는 다른 종류의 절절함이 터져 나왔다. 조금, 울고 싶었다.
꿈속에서 나는 부엌에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6시 반이 넘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배가 안 고프시니 저녁 준비는 천천히 해도 돼"라고 말씀하셨다. 어? 아빠는 돌아가셨는데?
사실을 확인하려 엄마에게 가보니, 아빠가 불이 꺼진 방 침대에 누워 기침을 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셨고 엄마는 침대 옆에 서 계셨다. 두 분 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이 검은 형체로만 보였다. 그때 나는 무서웠다. 아빠는 돌아가셨으니 지금 저기 누워있는 건 귀신인가 싶어 무서웠고, 제정신이 아닌 엄마도 무서웠다.
"엄마, 아빠는 떠나셨던 말이야! 엄마!"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이것이 꿈속임을 깨달았다. 얼른 깨어나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엄마!"하고 외쳤는데 진짜 내 입에서도 그 소리가 나오며 잠에서 빠져 나왔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며 흐느끼며 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것 역시 꿈이었다.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를 만났다고 해야 할지, 스쳐 지나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꿈이니까 그저 반갑다고 말을 건넸어도 좋았으련만 나는 왜 무섭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지금 정말 어디에 계신 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꿈은 반대라니까 어둠 속 말고 엄청 밝은 곳에 계신 거겠지 하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으나 진실은 누가 알까. 모르는 것 투성이라 한참을 앉아 있었다.
커튼을 열어젖혔다. 밝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여느 아침처럼 휴대폰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했다. 대학 동아리 후배인 현주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이 도착해 있었다. 아, 현주도 앞으로 모르는 일이 많이 생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