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달 동안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는 연남동 주택가 한가운데 있었다. 큰 골목을 중심으로 하여 작은 골목들이 생선 가시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주변 일대는 그런 생선이 여러 마리 헤엄치는 곳 같았다. 골목마다 어김없이 전깃줄이 가로지른다. 수십 개의 선들은 평행을 맞추지도 않고 제각각 뻗어 있다. 곧게 뻗어 있기만이라도 하면 다행인데, 아래로 쳐지거나 끝이 잘린 부분이 너저분하게 내려와 있기도 했다.
좁은 골목에 드리워진 전깃줄을 멀리서 보면 하늘과 지상의 경계선을 그어 놓은 것 같다. 가는 선은 전기가 통하는 전깃줄, 굵은 선은 인터넷을 실어나라는 광케이블이다. 저 선들 덕택에 이 골목 사람들은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온라인 세상을 떠돌며 지구촌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숙소 부근 자주 다니던 병원 앞에 전봇대가 있었다.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전봇대에 붙은 선의 마무리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동글동글 마치 똥머리처럼 말아서 붙여 놓았다. 어찌 보면 찜질방에서 수건으로 자주 만드는 양머리 같기도 했다. 작업을 하고 남은 부분이 많았는데 귀찮아서 대충 해 놓은 것인지, 혹시 모를 다음 쓰임을 위해 남겨 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선들이 겹쳐진 탓에 눈에 잘 띄었다.
한번 인식하자 그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똥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문득 커다란 가위를 들고 저것들을 뚝 끊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잘라서 세 가닥씩 모아 예쁘게 땋아 내리면 레게머리처럼 보일 것도 같은데. 외국 관광객들이 인기 폭발이지 않을까? 그러고도 남은 선들은 옷에 붙은 실밥 정리하듯 싹둑싹둑 잘라낸다면 골목은 훨씬 깨끗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옥에 갈 것이다. 전기가 끊겨 냉장고의 음식이 썩어 나고 인터넷이 안돼 각자 작은 방에 섬처럼 갇힌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상만으로 그쳤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작정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밖에서도 만나고 때때로 집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집에 갔더니 모두들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단지에는 머리위로 드리워진 전깃줄이 안 보였다. 깔끔하다. 짓기 전부터 계획에 따라 전기나 인터넷 선 같은 건 매립하여 지었을 것이다. 지저분하고 숨기고 싶은 것은 미리 감추는 센스.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지상으로는 택배 차량도 못 다니게 하는 아파트도 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1988년 잠실로 이사 가면서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는데 몇 년 뒤 다시 아파트에 갈 수도 있었다. 무려 강남으로. 90년대 초반 이야기인데 결국은 못 갔다. 내가 루프스(당시만 해도 희귀병)라는 큰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대학병원에 있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지만 나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엄마는 그때 돈이 있어서 나를 치료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강남 아파트로 갔어야 할 돈이 내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그곳으로 갔더라면 부모님의 삶은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서울에 집 있는 사람들은 다 대단해 보여."
오랜만에 만난, 망원동에 자기 집이 있는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유,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잖아."
빌라라 해도 내 눈에는 대단해 보이는데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주거공간을 넘은 그 무엇이 된 것 같다. 재테크의 수단, 노후 대책, 삶의 질을 담보하는 그 무엇. 그것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친구네 아파트서 한 밤 자고 온 날, 캄캄한 밤에 베란다로 나가 건너편 건물을 보니 층층마다 환하게 켜진 불빛 아래 사람들의 움직임이 (멀리서지만) 훤히 보였다. 자기만의 블록에 갇힌 사람들, 한꺼번에 그들을 보고 있으니 게임 속 세상 같기도 하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아파트가 뭐 그리 좋을까? 한 10년 후 애들 다 키우고 한국에 돌아오면 나도 살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는 곳이 남아 있긴 한 걸까? 이미 강남 아파트를 목숨으로 꿀꺽했던 경력이 있는 자의 질문은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딸들과 남산타워에 올랐다. 명동 입구에서 저녁으로 갈비탕을 뚝딱 해치운 뒤 케이블카를 탔다. 한국의 여름은 밤이 되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탁 트인 경치를 내려다보니 눈은 시원해졌다. 내친김에 전망대까지 올랐다. 360도로 펼쳐지는 밤 풍경에 감탄했다. 서울의 야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 앉아 야근하는 사람들과 고층 아파트 사람들이 뿜어내는 불빛 덕분이다. 그 불빛을 만들어 내느라 똥머리 전깃줄 속 전기는 오늘도 열심히 선을 타고 흘러 흘러 땅속으로도 들어갔다가 빌딩마다 집집마다 오가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