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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21. 2022

대한민국은 줄 서기 공화국이다

치열했던 캐리비안 베이 전투를 떠올리며

아주버님 장군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3 대 4 전술을 쓸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요?"


우리들은 두 눈에 힘 빡, 주며 비장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곧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의 문이 열릴 것이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아침 7시 30분. 일찍 온다고 했는데도 한 발 늦은 것 같다. 동지와 적들이 한데 섞여 이곳은 벌써부터 아수라장이다. 저들도 비슷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같은 곳을 향해 뛸 것이다. 설령 고지가 다르다 해도 우리의 전술을 펼쳐 보이는데 이토록 많은 인파는 방해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8시 정각이 되자 출입문이 열렸다. 우리 차례가 되어 내부로 침입했을 때 "3"에 속하는 아주버님, 형님, 나의 둘째 딸은 모든 짐을 들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4"를 담당하는 조카 둘과 나의 첫째 딸 그리고 나는 목표 지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역시 여름방학 마지막 일요일의 위력은 대단했다. 파도풀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는 인류의 파도를 타며 조금이라도 앞질러 보겠다고 기를 썼다. 뛰는 자, 달리는 자, 심지어 나는(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하늘을 나는 줄 착각한) 자도 보였다. 


그나마 날씨가 도왔다. 해는 모습을 감추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최적의 날씨를 선사했다. 하지만 래시가드를 입고 계속 오르막 길을 달렸더니 땀이 절로 흘러내렸는데 그것은 몸과 천 사이로 나올 틈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를 잡는 바람에 더워도 오죽 더운 게 아니었다. "4"를 책임지는 어른은 나 하나. 중딩과 고딩으로 구성된 병사들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야 했다. 


"순간의 힘냄이 미래의 2-3시간을 좌우한다! 알았나!"


사진 제공: 에버랜드 - 물론 나에게 직접 제공한 것은 아니외다


저 멀리 고지가 보였다. 캐리비안 베이를 강타한 초대형 복합 워터 슬라이드 메가스톰이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땅 아래까지 길게 뻗어 내렸다. 동지들! 힘내시오! 입구에 도착한 나는 이제 다 온 줄 알고 기쁨의 환호를 내지르려 했다. 하지만 병사 1과 2(조카들)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쭉 뻗었다가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휘몰아치는 계단을 어지럽게 오르자 드디어 줄 선 자들의 맨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앞선 저자들은 산삼을 캐 먹고 달린 게 분명하다. 


"장군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려라." 


사람들이 수영장 올 때 굳이,  왜, 방수백 안에 휴대폰을 넣어 가져오는 것인가 했더니 작전 수행을 위함인 것 같다. 무전기 대신 휴대폰. 저마다의 전술로 헤어져야만 했던 일행을 찾기 위해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케리비안 거리에는 계속 이곳을 향해 돌진하는 자들이 보였다. 8시 개장 시간에 맞춰 운영하는 놀이기구가 이것 하나밖에 없는 탓이리라. 이런 전쟁통에 우리는 줄을 섰고 래시가드에 붙어 있는 땀쯤이냐 조금만 있으면 워터 슬라이드에 오름과 동시에 씻겨져 내려갈 것이다.   


분명, 조금만 있으면 그리될 참이었는데 줄은 생각보다 천천히 줄었다. 기다리는 동안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차 버렸고 줄은 이제 거리로 이어졌다. 계단의 폭이 좁아 아주버님 장군의 일행은 이제 그 행렬을 뚫고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한 시간이 흘러서야 슬라이드 꼭대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커다란 튜브가 눈앞에 나타났다. 6명이서 한 조가 되어 같은 튜브를 타고 뱅글뱅글 돌아가며 355미터를 내려갈 예정이다. 1분을 위하여 기다린 60분이 헛되질 않기를, 굉장하게 더웠던 한국 여행의 끝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다른 놀이기구는 이것보다 짧게 기다리기를 기원하며 튜브에 올라타려는 순간, 


"잠시 큐패스 고객님들 먼저 타실게요."


라고 직원이 말하더니 다른 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온 일군의 무리가 우리 앞을 가로질러 튜브에 앉아버렸다. 아니, 저것은!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도 보았던 매직패스와 같은 것이 아니던가. 돈을 더 내면 줄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 마법 같은 패스권을 가진 자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을 돈 주고 산 저들이 왕이로구나. 


상대적 박탈감도 잠시, 다음 차례가 되어 엉덩이를 튜브에 붙이자 설레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 만에 온 야외 수영장이란 말인가! 튜브가 물살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다, 간다, 간다아아아아아아! 마흔다섯에 수영장 놀이기구를 타보니 쾌감은 끝내주되, (나이는 못 속이는 지라) 근육이 부르르 떨리고 뇌가 흔들려 어지럽거니와, 하도 "끼악, 끼악!!" 소리를 지른 탓에 물에 퐁당 빠졌을 때는 목이 칼칼하기까지 하였다.


개장하자마자 최선을 다해 달려도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실망할 뻔했다. 하지만 오후 시간 다시 그곳에 갔을 때 래시가드의 행렬이 계단 밖 저 먼 거리까지 길게 늘어져 3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나니 우리의 오픈런 작전이 대성공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함이 머리 위에서 폭죽처럼 터져 올랐다.   


매가스톰 시승을 마치고 다시 장군님, 아니 아주버님 일행을 만난 우리는 하루 해가 저물도록 마치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인 냥 신나게 첨벙거렸다. 인공으로 만들어 낸 파도에 몸을 맡겨 너울너울 춤을 추고 해골에서 떨어지는 물벼락을 자진해서 맞았다. 그러다 지치면 설탕 붙은 추로스도 사 먹고 바비큐에 맥주도 한잔 했다. 


이 모든 활동은 줄 서기에서 시작해 줄 서기로 끝났다. 구명조끼를 빌릴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음식을 살 때도 길고 짧은 줄 서기를 통과한 후에야 목표한 바를 얻어냈다. 거짓말 좀 보태면 물속에 있었던 시간보다 줄 선 시간 더 길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물놀이를 마치고 다시 라커룸으로 향했을 땐 샤워장 줄 서기를 포기했다. 라커 앞에서 물 뚝뚝 떨어지는 래시가드를 낑낑거리고 벗은 뒤 수건으로 대충 닦고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날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에서 나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줄 서기 공화국이다. 짧은 쾌락 위해 긴 고통 감수하는 한국인의 굳센 의지 만만세. 




줄 서기가 일상이 된 건 오래전부터인데 이제와 그걸 깨달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한국에 너무 오랜만에 와서 잠깐 잊었노라고 답해주련다. 인구밀도 낮은 스코틀랜드 시골마을에 살다 보니 진짜 깜빡했다. 그 탓에 롯데월드에 갔을 때는 이리저리 쏘다니며 몇 개 타고나자 밤 9시 퇴장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타야 할 놀이기구가 많이 남아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눈물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이들이 꼭 해보고 싶다던 4D 슈팅 시어터(안경 쓰고 뭘 슈팅하는 건가 보다)는 입구에도 못 갔단 말이다. 치밀한 작전을 세웠어야 했다. 분하다. 


놀이동산뿐이겠나. 인스타그램이나 TV에 나온 유명한 맛집이나 명품, 포켓몬빵을 사려고 해도 먼저 넘어야 하는 고비가 줄서기다. 차례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며 시간을 써야 얻을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알바가 있으니 이름하야 '줄 서기 알바'. 별의별 일자리를 다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줄 서기 알바는 말 그대로 대신 줄을 서는 것이다. 시급은 보통 만 원부터 시작해서 2-3만 원을 받기도 한단다. 명품 매장이 수요가 많고 아파트나 오피스텔 청약 현장도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노동이 아닌 시간을 파는 알바, 그런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늘면 우리들의 줄 서기는 편해질까? 내 몸은 편해도 나 대신 '몸빵' 하고 있는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나마 그건 알바를 고용하는 자들의 이야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나긴 줄의 맨 끝으로 가서 기다림을 시작해야 한다. 고될 것이다. 짜증도 날 것이다. 


하지만 믿고 싶다. 쫄쫄 굶다 먹는 밥이 더 맛있듯, 오랜 고통을 감수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 더 달 거라는 사실을, 작은 재미와 행복이 분명 그 안에도 숨어 있을 거라는 것을, 그리하여 두 손으로 막 파헤치며 그걸 찾아내는 사람이 승자라는 진리를, 치열했던 케리비안 전투에 임하는 우리들의 전술 속에 두고두고 추억할 거리들이 산처럼 쌓였음을 말이다.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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