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 같은데 눈 한 번 감았다 뜨고 나니 영국이다. 서울 연남동에서 한 달, 엄마네서 3주, 총 55일간의 한국 여행이 막을 내렸다. 한 여름밤의 꿈을 꾼 것 같다. 사뿐사뿐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뜬 시간이었다. 행복했고, 즐거웠다. 놀면서 돈 쓰는 일에 안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2-3년 만에 가던 한국을 코로나 탓에 한 번 쉬었더니 5년 만의 방문이 되었다. 거리의 풍경은 세월이 흐른 만큼 겉모습을 바꾸었고 친구와 선후배의 자식들 - 꼬마였던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어 공부한다고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함께 간 내 아이들도 똑같이 자라 갖고 싶다는 물건의 가격이 높아졌으며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의 셈이 정확해졌다. 장부를 써가며 기록하더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말했다. 야, 한국 들어오지 마. 살기 힘들어. 땅은 좁지 인구 많지, 경쟁도 세고 늘 쫓기듯 살아야 해. 가능만 하다면 나도 외국 가서 살고 싶구만. 게다가 이 정권에 들어오고 싶냐? 또 다른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나라가 먹을거리는 정말 최고지. 식당도 많아, 배달도 잘돼, 4계절 뚜렷하고 사람들 정 많고, 의료 서비스 세계 최강일 걸? 나이 드니 딴 나라에서는 죽어도 못 살겠더라.
한국은 그런 나라다. 작정하고 나서면 욕할 거리가 넘쳐난다. 살 곳이 못 된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실컷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작정하고 나섰더니 좋은 점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살고 싶은 나라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침 튀기며 한국을 찬양했다.
딱 욕을 했던 만큼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잘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지옥 같은 현실이라도 때때로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깔깔 웃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런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많아지면 좋겠다. 외따로 떨어지는 이 없이 모두가 웃음의 대열에 함께 가면 좋겠다.
다시 일상 앞에 섰다. 역시 설렌다. 특별함이 빛나려면 평범한 삶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한국에서 깊이 깨닫고 왔기 때문이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개와 산책하는 시간이 전보다 달콤해졌다. 연남동 2/3 지상 집을 통과하며 펼쳐졌던 재미있는 지옥(한국)에서의 경험이나 다시 마주한 심심한 천국(영국)에서의 삶이 사실은 모두 마법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마법사다. 지팡이는 내 손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