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음 Mar 03. 2023

외향인이라는 자격지심

글쓰기 책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메모를 많이 하고 관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오래 들여다보며 생각을 키우라는 건데,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 성격을 두고 자격지심이 생겼다. 그렇게 잘 못하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성향 중에서도 맨 끝에 가 있다.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내 비록 외모는 차분하게 생겼으나)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항상 수십 개씩 있다 보니 하나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살면서 들은 가장 웃기는 말이 선택과 집중이다. 선택도 어렵고 집중도 힘들다. 산만하다. 말도 많다.


이런 나도 메모를 하긴 한다. 너무 여러 곳에 하는 나머지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에 뭘 썼는지 헷갈린다. 냅킨에 써 놓고 코 풀어 버린다. 노트째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관찰은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서른이 될 때까지 책 같은 건 읽을 시간도 없었다. 사람들 만나 놀아야지 책은 무슨 책.


대신 일기와 연애편지는 죽도록 썼다. 전문분야가 짝사랑이었던 덕에 나를 좋아하는 여러 남학생을 제쳐두고 엉뚱한 다수의 그들에게 편지로 고백했다. 반드시 고백했다. 글로 고백한 남자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다. 표현을 해야함은 배웠으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어쩌다 글 쓰는 일로 사회생활을 했고 서른 중반 이후부터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쓰기를 공부했다. 글을 쓸 때는 적절히 숨기는 것도 능력이요, 독자들을 간질간질하게 해서 다음 단락까지 혹은 다음 글까지 이끌어내는 것도 요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이 생각할수록 멋진 비유법이 탄생하고, 생각을 곱씹을수록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알게만 되었다. 나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니 좋은 것을 보거나 감동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면 어디에 남기기보다는 "우와, 멋지다!" 같은 말을 공중에 흩뿌리며 순간에 충실했다. 흩어진 말들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마흔이 넘은 뇌세포는 그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첫 단독 저서를 냈을 때 인스타그램에 자작 인터뷰를  두 편 올렸다. 책을 내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구상해 온 거였다. 내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둘 다 되어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영상인데 내용은 코믹하게 구성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다른 내용에 비해 좋아요 수가 높았다. 그것이 작가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거나 책 구매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웃기만 했다.


그냥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자주 내향인임을 고백하길래, 나는 어쩐지 글을 잘 쓸 기본 소양이 부족한 것 같길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알고는 있기에 한번 지나가는 글로 써봤다. 머릿속에만 가두지 않고 이렇게 써서 공개해 놨으니 몇 년 후엔 읽다가 웃겨서 뿜게 될까.   


이런 글 쓴다고 갑자기 성격이 변할 리도 없고 메모의 달인이 되거나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다만 노력은 하고 있다. 읽으면 쓰려고. 쓰면 읽으려고. 산책하면서 한 번은 더 생각해 보려고. 나도 관찰이란 걸 해보려고. 이왕이면 남겨 놓으려고.


비루한 자격지심이 그나마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바로 이 순간에 갑자기 들었다. 아, 갑작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이버 검색창에 묻는 은밀한 욕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