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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09. 2023

결혼 20년 차에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남편이 한국으로 일터를 옮겼다. 

나는 아이들과 영국에 남기로 했다. 

졸지에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오늘부터 1일이다. 




낮에 남편을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다. 큰 가방, 중간 가방, 작은 가방을 들고 그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보내고 오는 차속에서 눈물이 시야를 가려 앞이 뿌옇게 되었다. 운전을 해야 했으므로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말로만 듣던 기러기 부부를 우리가 하게 되다니 잘한 선택이었을까? 지난 몇 개월 간 우리 부부가 수도 없이 했던 고민이다. 


함께 한국을 떠나온 지 14년째였다. 나이 들면 다시 돌아가야 하나를 생각하던 즈음 마침 한국에서도 남편에게 오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고,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다 결정을 했다.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영국과 한국에서 떨어져 살자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40대의 일상은 30대와는 비교도 안되게 바쁘게 흘렀으니 서로가 곁에 있지 않아도 그런 바쁜 나날을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만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 1-3개월마다 볼 예정이다.) 


괜찮을 것이다. 근데 오늘만은 괜찮지가 않다. 집에 돌아와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아침에 함께 마신 커피잔을 씻다가 이젠 혼자인가 싶어 마음에 울적해졌다. 게다가 자려고 침대 이불을 들췄는데 이런 메모를 발견하고 말았다. 애써 가라앉힌 감정이 다시 올라와 두 눈으로 터져 나왔다. 



만 스물다섯(나), 스물여섯(남편)에 만나 이듬해에 결혼하여 함께 산지 20년이 되었다. 삶과 가치관을 나누는 과정에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최고 인생 멘토이자 가장 좋은 술친구이다. 앞으로 몇 년은 매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정재찬 교수님이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에게 "인생은 정답을 선택하는 것보다 선택한 것을 정답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해 보인다"라고 말해 주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었다. 신입생도 아닌데 그 말에 큰 힘을 얻었다. 어떤 선택이든 100% 만족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가장 나은 것으로 만드는 건 이제 그와 나의 몫이다.  


우리는 잘 해낼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최고임을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내 남자의 새로운 한국 생활을 응원할 것이다.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건 오늘까지만 하는 걸로. 


나도 사랑해. 여보야. 




라고 지난 2월 21일 밤에 썼습니다. 기러기 부부가 된 첫날 느꼈던 감정을 글 속에다 꽁꽁 동여매 놓았어요. 여러 이유로 발행은 오늘 합니다. 다시 읽어 보니 흠, 오글거리네요. 3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어떠냐고요? 아실 텐데요. 신혼 아니고 20년 차 부부라서요. ^^ 어쨌거나 3주 뒤에 남편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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