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김정미, 권성남.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 등교 첫날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했는데 50명이 넘는 반 애들 중 성남이는 5번, 나는 6번. 둘이서 발 뒤꿈치를 들어가며 서로가 더 크다고 우길 때 12번 정미 너는 우리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지. 그날부터였어. 우리 셋이 붙어 다닌 게.
기억나니? <영웅본색 2>를 보며 서로를 붙잡고 눈물바다에서 헤엄쳤던 시절을 말이야. ♪ 모아이 모농 깜띠 빅시 ♫ 라고 시작하는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장국영 브로마이드며 엽서 같은 걸 사모았잖니. 한 남자를 두고 사랑을 퍼붓는 사이에 질투 대신 우정이 싹튼다는 사실에 우리는 자주 웃음을 터트렸어.
내가 장국영을 떠나 현실의 남학생으로 옮겨갈 때 너와 성남이는 다른 홍콩 배우에게 눈을 돌렸지. 유덕화, 양조위, 금성무, 여명 등. 급기야는 중국어 공부를 하더니 너희가 홍콩에서 발행된 연예 잡지를 술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대학생이 된 성남이는 금성무 팬클럽 회장이 되어 비행기 타고 홍콩을 드나들며 콘서트를 녹화한 뒤 CD로 구워 회원들에게 파는 사업을 했지. 너는 일본으로 유학 가 홍콩 남자와 사귀었고. 그때 나는 너희가 나와는 다른 레벨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비록 나는 큰 그릇이 못되지만 내 친구들이 그런 배포를 갖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어.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이라 14년 전 한국을 떠날 때 너희와 연락이 끊겼지. 여러 번 찾으려고 했었어. 그런데 성남이를 찾다 보니 주로 남자들이 나오더라. 정미 너는 후유, 말을 말자. 네가 만약 팽정미나 반정미였다면 시간이 걸려도 더 노력했을 거야. 하지만 너는 김정미. 살면서 만났던 여러 김정미가 있는 까닭에 나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어. 고등학교 친구 이정은, 김희경도 아직 못 찾고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아 줘, 정미야.
덧붙임 1: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의 저자 편성준 작가님께 요즘 글쓰기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3차 과제로 냈던 것입니다. 과제 내용은 다음과 같았는데요, 글자수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과제: 어떤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써오십시오. 800-1000자 사이]
덧붙임 2: 권성남, 안송이와 친했던, 잠실 살았던 김정미를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