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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an 20. 2016

킬트 안에는 정말 속옷을 안 입을까?

스코틀랜드 전통의상 킬트에 관한 궁금증

그 소리는 “으흐흐”였거나 “낄낄낄”이었다. 킬트 제작자 일레인과 나는 마주 보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머릿속에서 엇비슷한 상상을 한 까닭이리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우린 아줌마들이다. 그저 스코틀랜드 문화와 관련된 정보를 말하고 들었을 뿐이다. 이제 펼쳐지는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두 여자가 웃었던 이유에 관한 것이다. 다소 엉큼한 으흐흐 혹은 낄낄낄에 관한.       






에든버러에 왔을 때 모든 게 신기했지만 그중 제일은 치마 입은 남자를 보는 것이었다. 타르탄이라고 부르는 체크무늬 천으로 만든 무릎길이 치마와 상의 - 이것이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다. 치마는 대개 세로로 주름이 잡혀있다. 이곳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대학 졸업식 같은 특별한 행사나 하일랜드 댄스‧게임 등을 할 때 킬트를 즐겨 입는다. 우리나라 한복보다 더 자주 입는 것 같다. 에든버러 거리 곳곳에서 킬트를 입은 남자들이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2015년 8월 에든버러 로열 마일에서 진행되었던 파이프 연주 퍼레이드 


킬트가 전통의상이라지만 역사가 길지는 않다. 16세기에는 타르탄 천으로 어깨에 걸쳐 몸을 전체 뒤덮은 다음 벨트를 매는 방식이었단다. 그러다가 1720년대 토마스라는 사람이 윗옷과 치마를 분리시키면서 오늘의 킬트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1746년 쿨로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진 뒤 킬트 착용이 금지됐지만 여차 저차 하여 1782년에 풀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스코틀랜드의 대표 의상이 된 것은 19세기 문화 부흥 시기를 거치면서다. 길어봤자 2-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근대 의상이다.        


남자도 입는 치마, 킬트를 언급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킬트 안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전통을 잘 지키고 있을지 궁금했다. 바람이 센 이 도시에서 치마 속에  아무것도 안 입는다면 통풍 걱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 치마가 펄럭이기라도 하는 날엔......! 그런 날엔! 상상을 접고 카메라를 챙겨 에든버러 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에든버러 성 바로 앞, 오른쪽에 있는 <Tartan Weaving  Mill and Experience>라는 가게다. 꽤 큰 기념품 상점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타르탄 직물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간단하게 견학도 할 수 있는 곳이다. 킬트뿐 아니라 타르탄 천으로 만든 목도리며, 스웨터며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일레인을 만났다. 그녀는 10년 넘게 킬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맞춤양복처럼 고객의 주문을 받아 직접 킬트를 제작하는 일이다.   


킬트 제작자 일레인


“안녕하세요? 킬트에 관해 여쭤볼 게 있어요.”     


일레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따뜻한 미소를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뭔데요? 말해 보세요.”


“저기, 킬트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다던데 정말인가요? 요즘에도 그래요?”     


“네, 맞아요. 안 입어요. 간혹 애들은 입기도 하는데 어른들은 대개 안 입지요.”     


워메, 진짜였다!


“진짜요!? 그러면 겨울에는 좀 춥겠어요!”


“안 추워요. 지금 결혼식용 킬트를 만들고 있는데 이 천을 만져 봐요. 보온이 잘 되는 양털로 만든 거예요.”      


일레인이 건네준 천은 꽤 도톰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람은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나. 치마 속이라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가 한 마디 보탰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가 있어요. 바로 이 주머니예요. 치마 안 쪽에 이렇게 달 거예요. 그러면 따뜻하답니다.”


이 주머니,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그녀는 아직 치마와 꿰매지 않은 주머니를 보여주며 치마를 입으면 그것이 정확히 남자들의 다리 사이에 온다고 했다. 주머니를 보자마자 나의 웃음소리는 금세 “푸하하하”로 바뀌었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가 친절하게 몇 가지를 더 일러주었지만 소리 높여 웃느라 들리지 않았다. 겨우 진정한 나는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 했다. 영어로 대화할 때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일레인에게 바짝 다가갔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니까 이 주머니 안에 남자들의 거시기를......."


“어머나, 그게 아니에요. 푸하하하.” 


이번엔 일레인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 주머니는 내가 상상한(?) 용도가 아니었다. 추운 날씨에 킬트를 입어야 할 때 핫팩이나 핸드 워머 같은 보온제품을 넣는 주머니였던 것이다. 그러면 치마 속이 후끈후끈해서 절대 춥지 않다고 설명해줬다. 어쩐지, 크기가 좀 어정쩡하다 싶었다. 이후 우리는 몇 초 간의 침묵을 벗 삼아 마주 보며 오묘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으흐흐, 낄낄낄. 


"많은 루머들이 있지만....... 비밀이라서 직접 말할 순 없고....... 바람 부는 날 직접 확인하세요."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그녀를 만난 후로도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 발모랄 호텔 도어맨 등 여러 사람 만나 킬트와 속옷에 대해 물었다. 일레인은 확신에 차서 “No”라고 대답했지만 다른 이들은 “사람에 따라 입기도, 안 입기도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스코틀랜드 혈통만 있는 집안이라면 안 입는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또 한복처럼 킬트 역시 대여를 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속옷을  입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킬트 아래 남자들의 허연 엉덩이가 보인다고 해도 너무 놀라지는 마시라. 그들이 알짜배기 스코틀랜드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증거다!






<Tartan Weaving Mill and Experience>의  이모저모 


*타르탄(Tartan): 킬트의 재료가 되는 체크무늬 천

옛날 어느 시기에는 나무틀에 색깔 실을 끼워 타르탄 천을 짰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나무틀이  철제 기계로 변했을 테고,


오늘날 타르탄 천은  '철거덕, 철거덕' 기계가 돌아가며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많은 실이 기계 하나로 모여 타르탄 천을 만들어 낸다. 하나라도 틀어지면 큰 일.


타르탄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무늬다. 원하면 누구나 주문하여 제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개 이상의 타르탄이 새롭게 제작되고 있다.   


가문마다 고유한 타르탄 무늬가 있다. 예를 들어 위 목도리는 Stewart Royal의 무늬다. 유명한 체크무늬 중 하나다. 스튜어트 가문이 아닌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다.


시대별 킬트 모음 1  (맨 오른쪽 것이 1600년대)


시대별 킬트 모음 2 (맨 왼쪽 것이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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