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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Apr 17. 2017

말로 배우는 수영이 가능한 이유

 

스코틀랜드에 와서 1년쯤 있다가 아이들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째 딸은 미국에서 배운 것까지 합치면 5년 정도 하다가 지금은 그만둔 상태고, 둘째 딸은 쉬다 말다를 반복하며 4년째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했으면 모든 과정을 끝내고도 남아 출중한 실력을 자랑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주 5일 한 시간씩 있는 수영 수업에서 딱 두 달 배우고 모든 걸 마스터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 애들의 현실은? 첫째는 다이빙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은 했는데 결국 못 배우고 관두었다. 7살 둘째는 깊이가 깊은 물에서 10미터 정도를 가긴 한다. 그런데 여전히 숨을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중간중간 쉬면서 한다. 아이고, 속 터져라. 이 속도로 가다가 수영을 언제 다 배우려나? 모르긴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느려 터진 수업 진행에 다들 복장이 터질 것 같다.    


이곳은 수영 수업이 일주일에 단 한 번 30분씩이다. 처음 강습을 시작했을 때 고작 그렇게 배우고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싶었다. 일주일 전에 배웠던 걸 아이들이 기억이나 할까. 더욱 놀라운 건 강사가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 밖에서 말로만 이래라저래라 한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영국에서는 그렇게 배운다. 문화충격이었다. 이런 방식을 생각하면 우리 애들이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게 오히려 신통하다. 수영을 말로 배우는 게 가능하냐고? 가능하긴 하더라.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부모는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어쩔 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기도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수영 수업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강사가 물밖에서 팔다리를 돌려가며 영법을 설명하면 아이들은 물속에서 알려준 데로 해 본다. 간혹 틀리게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도 말로 알려준다.


자기가 이해한 방식 데로 하기 때문에 초급반은 수영하는 폼이 제각각이다. 그런데 레벨이 높아지자 자세교정도 하기는 해주더라. 역시 말로만. 둘째 딸은 아직 폼이 엉성한 게 코믹 그 자체지만 첫째 딸은 제법 수영하는 자세가 나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실행의 문제였다는 걸 깨닫는다. 수영을 배워야 하는 건 아이들이다. 강사가 직접 시범을 보이건, 말로 설명하건 그걸 제대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아이들 각자의 몫이다. 수영 선생님이 물속에서 가르치면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긴 하겠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모른 게 느려도 불평 없이 견디는 영국 시스템다운 교습법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건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는 일일 것이다. 마흔을 넘기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이 책 저 책 들쑤시고 있는데 그러면 뭐하나. 읽기로만 끝이 나는데. 이건 수영 방법을 말로 배우고 나서 "그렇군" 끄덕인 후 직접 해보지는 않은 것과 같다.


훌륭한 사람들이 몸소 보인 모범이건 독서를 통해 깨달은 교훈이건 실행을 해야 빛을 발한다. 보고도 듣고도 내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껍데기 지식으로 남을 뿐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안다고 아는 척은 하고 싶겠지. 나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남들 이야기 듣다가 어설픈 충고는 하고 싶겠지. 어쩐지 꼰대의 기본 자격을 갖추어 가는 듯하다.


故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 않는 이론은 질곡이라고 했다. 실천 없이 책만 읽는 것이 “인식-> 인식-> 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땅을 잃고 공중으로 관념화해 간다고 말했다. 나의 이론 역시 현실의 땅을 벗어나 저만치서 헤매고 있더라니. 이제 정말 아는 만큼 결심한 만큼 실천을 해야 할 때라고, 아이들 수영 수업을 바라보다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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