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 와서 1년쯤 있다가 아이들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째 딸은 미국에서 배운 것까지 합치면 5년 정도 하다가 지금은 그만둔 상태고, 둘째 딸은 쉬다 말다를 반복하며 4년째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했으면 모든 과정을 끝내고도 남아 출중한 실력을 자랑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주 5일 한 시간씩 있는 수영 수업에서 딱 두 달 배우고 모든 걸 마스터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 애들의 현실은? 첫째는 다이빙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은 했는데 결국 못 배우고 관두었다. 7살 둘째는 깊이가 깊은 물에서 10미터 정도를 가긴 한다. 그런데 여전히 숨을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중간중간 쉬면서 한다. 아이고, 속 터져라. 이 속도로 가다가 수영을 언제 다 배우려나? 모르긴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느려 터진 수업 진행에 다들 복장이 터질 것 같다.
이곳은 수영 수업이 일주일에 단 한 번 30분씩이다. 처음 강습을 시작했을 때 고작 그렇게 배우고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싶었다. 일주일 전에 배웠던 걸 아이들이 기억이나 할까. 더욱 놀라운 건 강사가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 밖에서 말로만 이래라저래라 한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영국에서는 그렇게 배운다. 문화충격이었다. 이런 방식을 생각하면 우리 애들이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게 오히려 신통하다. 수영을 말로 배우는 게 가능하냐고? 가능하긴 하더라.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부모는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어쩔 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기도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수영 수업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강사가 물밖에서 팔다리를 돌려가며 영법을 설명하면 아이들은 물속에서 알려준 데로 해 본다. 간혹 틀리게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도 말로 알려준다.
자기가 이해한 방식 데로 하기 때문에 초급반은 수영하는 폼이 제각각이다. 그런데 레벨이 높아지자 자세교정도 하기는 해주더라. 역시 말로만. 둘째 딸은 아직 폼이 엉성한 게 코믹 그 자체지만 첫째 딸은 제법 수영하는 자세가 나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실행의 문제였다는 걸 깨닫는다. 수영을 배워야 하는 건 아이들이다. 강사가 직접 시범을 보이건, 말로 설명하건 그걸 제대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아이들 각자의 몫이다. 수영 선생님이 물속에서 가르치면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긴 하겠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모른 게 느려도 불평 없이 견디는 영국 시스템다운 교습법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건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는 일일 것이다. 마흔을 넘기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이 책 저 책 들쑤시고 있는데 그러면 뭐하나. 읽기로만 끝이 나는데. 이건 수영 방법을 말로 배우고 나서 "그렇군" 끄덕인 후 직접 해보지는 않은 것과 같다.
훌륭한 사람들이 몸소 보인 모범이건 독서를 통해 깨달은 교훈이건 실행을 해야 빛을 발한다. 보고도 듣고도 내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껍데기 지식으로 남을 뿐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안다고 아는 척은 하고 싶겠지. 나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남들 이야기 듣다가 어설픈 충고는 하고 싶겠지. 어쩐지 꼰대의 기본 자격을 갖추어 가는 듯하다.
故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 않는 이론은 질곡이라고 했다. 실천 없이 책만 읽는 것이 “인식-> 인식-> 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땅을 잃고 공중으로 관념화해 간다고 말했다. 나의 이론 역시 현실의 땅을 벗어나 저만치서 헤매고 있더라니. 이제 정말 아는 만큼 결심한 만큼 실천을 해야 할 때라고, 아이들 수영 수업을 바라보다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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