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년밖에 안된 시점이었다. 스스로가 애인지 어른인지 구분도 안될 나이였기에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며느리랍시고 참석하는 게 마냥 신기하고 흥미롭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철이 덜 들었을 때였다.
한 번은 시댁에서 벌초를 한다고 하여 일가친척 어르신들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선산에 올라가 남자들이 광주 이 씨 조상님들의 묘를 예쁘게 다듬을 동안 여자들은 근처 친척집의 부엌에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 상을 차렸다. 나는 제일 어렸으므로 어른들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고 힘들다는 마음보다는 북적북적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게 즐겁고 재밌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벌초를 끝낸 어르신들이 내려오셨을 때는 음식상이 준비되었다. 새댁답게 조용히 앉아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누구는 치우고 누구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소란한 틈 속 건너편에 촌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 (몇 다리 건너 건너) 50대쯤 되신 아주버님이 혼자 막걸리를 드시는 게 보였다. 아니 왜 혼술을!
사람 수가 많으니 밥상이 여러 개였는데 내가 앉았던 상에서도 거의 식사가 끝날 때라 나는 별생각 없이 빈 잔을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친척 아주버님께 다가갔다.
"혼자 드시면 재미없잖아요. 저도 한잔 따라 주세요"
내가 누구냐! 대학 시절 노래 동아리에서 부회장을 역임하며 10년 위 선배들을 담당해 온 귀염둥이가 아니었던가. 동아리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집행부 선배들은 높은 학번 선배들이 오면 후배들을 적절히 배치시켜 친목을 도모하게 했다.
1학년 때부터 86, 87학번이 내 담당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80년대 학번 선배들과 친해졌다. 그렇게 스무 살 때부터 다져온 필살기를 발휘할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 나는 얼굴 처음 뵌 아주버님과 일대일로 대작을 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신입 며느리가 취하고 실수도 좀 하고 이래야 이야기가 재미나게 펼쳐지던데 내 삶은 드라마가 아니었으므로 취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어쨌거나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어른들은 깔깔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씨 집안에 아주 특이한 며느리가 들어왔네, 들어왔어!"
특이했던 스물여섯의 광주 이 씨 집안 며느리는 무럭무럭 늙어 영국 스코틀랜드에 살게 된다.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엉뚱한 모습을 더 보여드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지도. 특이하다는 건 사실 별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조금 더 행동을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평범함보다는 비범함을 꿈꾸며 도드라져 보이고 싶다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니 무척 평이하게 살아왔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평범함의 또 다른 이름은 편안함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남들과 달라지려 혹은 같아지려 노력하는 삶은 양쪽 모두 쉽지 않다. 물 흐르듯 본성을 인정하며 살고 싶다. 어쩌면 그게 가장 특이할 수도. 어렸던 며느리는 그렇게 철이 들어간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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