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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Feb 08. 2024

개 입양하고 산후우울증 걸린 여자

한 지붕 아래 동물과 함께

가슴으로 낳은 개자식도 자식이다

오늘 나는 이 명제를 증명하려 한다. 8주 된 개를 입양하고 산후우울증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자고로 산후우울증이란 아이를 출산한 후 호르몬 변화에 따른 우울감 등의 증상을 말하는데, 지 뱃속으로 낳은 자식도 아니면서 (심지어 동물이면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이더냐.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9년 11월로 가보자. 겨울이 시작되고 추워가 점점 기승을 부릴 무렵, 우리 가족은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옆동네 어느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 집은 목장을 운영하며 양을 기르는 집이었는데 잭러셀 테리어 개 두 마리가 너른 들판을 뛰어 당기며 양치는 일을 도왔다.  


그 집에 경사가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태어난 것이다. 우리 가족이 간 이유는 강아지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냥 구경만 할 참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개 키우자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에게 "생명 키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며 못을 박아두던 참이었다. 


부엌 한편에 마련된 개집에는 기니피그보다 조금 큰 강아지들이 "여긴 어디?", "나는 누구?"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한 눈빛을 하고 고개를 돌려가며 사방을 탐색 중이었다. 어미개가 오자 모두 어미배에 입을 갖다 대어 젖을 쪽쪽 빨기도 했다. 





순간 내 눈에서는 별이 발사되었다. 발사된 별은 강아지들에게 내리 꽂혔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 귀엽고도 순수한 생명체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귀여워, 귀여워, 너무 귀여워!!


가족 넷이 귀엽다는 말만 연발하다가 일을 냈다. 덜컥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진작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나만 허락하면 될 일이었다. 네 다리는 햐얗지만 등이 까만 털로 뒤덮인 녀석을 골랐다.


3주 된 강아지는 바로 입양을 수가 없어서 5주 뒤에 데려가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로도 아이들은 강아지 보러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고 차례 더 방문하여 우리 식구가 될 녀석이 잘 자라는지 살폈다. 개의 하루는 사람과 다르다더니 몇 주만에 꼬물거리던 덩어리 어엿한 강아지가 되어 었었다. 이름을 '코리'라 지어주었다. 이후 수많은 별칭이 생겼는데 브런치에서는 별칭 중 하나인 '꼬댕이'라 통일하겠다.   


8주 차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불을 깐 작은 상자를 들고 목장에 당도했다. 조심스레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아이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나 역시 생애 첫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경이로운 순간, 마음이 폭신폭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꾸나!





하지만 이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양 첫날밤부터 사달이 났다. 거실에 침대를 만들어 두었기에 우리는 꼬댕이를 재운 뒤 2층으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 중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잠이 깬 남편과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후 꼬댕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우리가 올라가면 바로 하울링을 해댔다. 안고 어르고 달래느라 잠을 설쳤다. 그러니까 첫날부터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후회가 밀려든 것이. 


갈수록 태산이었다.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일은 며칠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온전히 자리 잡으려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입양 후에 알게 되었을까. 너무 어려서 혼자 집에 놔두고 장 보러 갈 수도 없었다. 반려견에 관해 미리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다시 목 이물감, 호흡 곤란 등의 불안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당시 나는 공황장애가 있었고 겨우 극복했다고 믿을 때였다. 


머릿속에는 강아지 때문에 펼쳐질 나의 어두운 미래가 끊임없이 그려졌다. 개를 돌보느라 내 인생은 망가질 것이다, 평생 발목 잡혀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예쁘지 않다, 다시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니 돌려줄 수가 없다, 나는 망했구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했다. 이성적으로는 나 또한 그럴 것이라 여겼지만 당장의 머릿속 사고체계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망했구나....... 망했구나.......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전보다 심해졌다. 눈물이 자주 흘렀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쉬기 힘든 증상도 새로 생겼다. 어떤 날은 밥을 한 숟가락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강아지를 만질 수조차 없었다. 의사 헬렌도, 친구들도, 남편도 그렇게 힘들면 강아지를 목장에 도로 데려다주자고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가족의 행복이 망가질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그 마저도 마음 편히 결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내가 겪은 마음 상태는 산후우울증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첫째를 낳았을 때도, 둘째 때도 나는 1-2주 간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행복감보다는 내가 낳은 이 연약한 아이가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어린이집에서 학대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로 지새우던 때가 있었다. 개를 입양하고도 같은 증상이 생길 줄이야. 가슴으로 낳은 개자식도 자식은 자식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좋은 엄마 & 좋은 아내 증후군, 완벽주의가 있던 나는 강아지 때문에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했던 것 같다. 꼬댕이 역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홀로 지새워야 하는 밤이 불안했을 것이다. 나의 불안과 꼬댕이의 불안은 공중에서 만나 불꽃을 튀기다 '뻥'하고 터져버렸다. 


다행인 것은 녀석 덕분에 공황장애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그 후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길래 하루에 한두 시간씩 걷고 뛰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풍경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꼬댕이도 예쁘게 보였다. 새끼 개를 갓난아이처럼 돌봐주는 시기가 길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이 도와 그 고비를 잘 넘겼다.   


지금은 어떠냐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꼬댕이의 얼굴과 머리, 엉덩이에 뽀뽀를 해대는 극성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애기 준다고 닭가슴살과 갈비뼈를 사다가 삶고 굽는다. 엊그저께는 동물병원에 정기검진 갔다가 헬스플랜 서비스를 신청하여 매달 16파운드 (약 27,000원)씩 내기로 했으니 오토통재로다, 우리 집 경제는 어찌하오리까! 


꼬댕이는 우여곡절 끝에 당당히 우리 집 셋째로 자리 잡아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때론 여러 가지를 인간들에게 가르치며 오늘도 희희낙락이다.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혼자 하면 외로우니까 앵무새 앵순이 이야기도 함께 한다. 영국 사는 꼬댕이와 한국 사는 앵순이 스토리. 일명 이런 개새!  




* <개새육아>는 1주일에 2차례 씩 글이 올라갑니다. 같은 주제로 개 1 회 새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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