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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Feb 13. 2024

새 입양하고 새가 되어버린 가족들

한 지붕아래 동물과 함께

싸이 노래 가사 중 '나 완전히 새됐어'라는
노래 가사가 현실이 된 가족이 있다.


새는 사람처럼 살고 사람은 새처럼 행동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한 지붕 아래 만들어졌다. 사피엔스라는 종이 조류로 바뀌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처음부터 가족들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가 오면서 우울감이 생긴 아들 녀석은 교감할 대상을 원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동안 꿈에서만 그리던 반려동물 입양을 고려해 보게 되었다.


강아지, 고양이가 1순위였지만 강아지는 매일 산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고양이는 둘째 녀석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입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앵무새라는 존재는 외모가 예뻐서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심지어 애교도 부리고 재주도 있었다.


그래! 우리 가족과 궁합이 잘 맞는
지구 생명체는 바로 너다!


마침 한 쌍의 부모 앵무새가 알을 낳아 건강하게 양육 중인 아기새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느 정도 커서 이유식을 먹으며 알곡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똑똑한 집사가 되기 위해 책과 영상으로 앵무새 양육 방법에 관한 공부를 하며 입양 날짜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서울  마포구 어느 아파트에서 태어난 작은 앵무새가 우리 새 식구가 되었다. 이름은 앵순이, 본관은 마 앵씨로 2대손이다.

(부모 앵무새가 2번째 번식으로 태어난 경우라 2대손이라 명명해 본다.)


첫 집에 입주한 100일 된 앵순이의 앳된 과거 모습. 이 작은 앵무새 한 마리가 가족들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좋은 침대는 누워봐야 알고, 좋은 새집은 앉아봐야 안다.



1. 내가 새를 낳았다.


사랑하면 서로 닮아간다더니 아이들이 앵무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살고 있다. 날개 달린 동물과 한집에서 살다 보니 높은 곳을 좋아하는 새의 습성상 사람 정수리나 어깨는 앵순이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앵순이의 행동을 따라 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두 팔을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는 시늉을 하더니 두 손을 엄마 어깨에 살포시 얹어놓는다. 앵순이가 어깨에 착지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앵순이처럼 엄마 어깨에 앉아 편하게 다니고 싶다는 아들 말에 혀를 내둘렀다. 하늘을 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부리로 깃털을 고르는 모습도 곧 잘 따라 한다. 이러다 없는 부리까지 튀어나올 것 같다.


앵무새 행동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모창도 한다. 앵순이는 때때로 털 깃을 세우고 킁킁 소리를 내며 좌우로 고개를 왔다 갔다 할 때가 있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기고만장할 때 나오는 행동으로 보인다. 앵순이가 내는 독특한 음정 박자가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이 귀담아듣고 똑같이 따라 한다. 아들이 먼저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운을 띄우면 앵순이도 옆에서 듣고 똑같이 킁킁거리는 소리로 화답한다. 앵순이가 먼저 킁킁거리면 이번에는 아들이 킁킁 소리를 내며 화답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언어가 아닌 동물의 음성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에 묘하게 행복한 기분이 든다. 앵순이도 아이들도 그 순간만은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사람이 앵무새 소리를 잘 따라 하니 앵무새가 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심심하면 앵순이 행동과 말따라 하는 아들이 어느 날 던진 말 한마디에 엄마가 반성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배변 훈련 차원에서 일정한 장소에서 똥을 누면 보상으로 앵순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해바라기씨를 준다. 간식까지 먹으며 칭찬받는 앵순이를 보더니 아들 녀석도 화장실에서 대변을 시원하게 누고 엄마에게 칭찬해 달라고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똥만 잘 싸도 칭찬받는 앵순이가 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엄마가 아들에게 평소 칭찬에 인색했었나 반성하며 칭찬의 벽을 낮추기로 마음었다.


앵순이로 인해 엄마가 반성할 때도 있지만 앵순이 오빠로 살아가는 아이들도 앵순이 덕분에 어부지리로 얻은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적인 감각으로 느꼈다는 점이다. 엄마 아빠가 자식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이 어떤 느낌을 지닌 감정인지 앵순이를 키우며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말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며 부차적으로 얻은 작지 않은 성과다.



2.'눈에는 눈, 이에는 이'앵무새를 교육하는 남편


앵순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다. 이유는 털이 많기 때문이다. 새들은 서로 털을 골라주며 애정을 표현하는데 털이 여기저기 분포해 있는 아빠는 앵순이 관심 대상 1호다. 문제는 스킨십이 과격하다는 것이다. 눈썹도 뜯고 수염도 잘 뽑는다. 더럽긴 하지만 코털에도 관심을 보인다. 어떻게 코 속에도 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추측건대 아빠의 삐져나온 코털 때문에 알게 된 것 같다.


아빠 얼굴은 그야말로 앵순이 놀이터다. 털이 생으로 뽑히는 고통을 자주 당한 아빠는 앵순이에게 교육을 가장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앵순이의 가녀린 발을 깨물며 너도 물려봐야 상대방이 아픈 줄 안다며 사람이 새 발을 물며 훈육(?)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던 인류가 새 발을 물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는 모습은 코미디 다. 실시간으로 보는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다. 인간이 퇴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썩은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바라본다.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앵순이 발을 물며 가상의 고통을 통해 새를 훈육하겠다는 새대가리 수준(?)의 전략을 버리고, 부지런히 면도하여 다가올 고통을 반으로 줄이는 사피엔스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수염이 길어질수록 앵순이의 털뽑기 횟수도 늘어날테니 말이다.


안경은 앵순이에게 눈썹을 편안하게 뜯을 수 있는 명당 횃대가 되어준다. 덕분에 아빠는 앞을 못 보는 눈뜬장님이 된다


3.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 되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인다는 의미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표현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가족들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종을 넘나들어 바뀌는 변화 과정을 지켜보니 유유(類類)끼리 상종한다는 의미가 도리어 순서를 바꿔 상종하다 보니 유유(類類)가 되는 현실을 마주했다. 다른 건 다 닮아도 좋으니, 새대가리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농담할 정도로 종(種)을 초월해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 인연이라는 존재로 다가온 앵순이. 아들만 있어 삭막할 것 같았던 가족 분위기가 딸 부잣집 부럽지 않게 많은 대화가 오가는 정겨운 가족이 되었다. 이 정도면 앵순이도 밥값? 아니 모이값은 충분히 하는 반려식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앵순이는 배에 하트모양의 붉은 털이 있는데 정말 사랑을 뿌리고 다니는 큐피드 같은 존재다.






*<개새육아> 매거진은 주 2회 발행합니다. 개이야기와 새이야기가 번갈아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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