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베이비부머 노동계급의 사랑과 긍지
영국을 사회주의라 우기는 영국 노동자 아저씨가 있다면? 산업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나라를 두고 웬 사회주의?
"이 나라는 부유한 녀석들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야. 우리한테만 '먹느냐 먹히느냐'의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 부유층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정치에 의해 잘도 보호받고 있지. 그 녀석들한테만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샛길을 마련해 주고 규제를 완화해서 장사하기 쉽게 해 주었지. 무슨 짓을 어떻게 하든 정부가 뒤를 다 닦아주는 거야."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없는 자들에겐 신자유주의, 있는 자들에겐 사회주의. 없는 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는 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정부를 향해 툴툴거리며 하는 이야기다. 브래디 미카코가 쓴 책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에서 영국 아저씨 사이먼이 한 말이다. 정부의 긴축 재정 등으로 불평등이 만연해 있는 탓에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노동자들의 푸념을 보여주는 예다.
이 책은 일본 작가인 브래디가 노동 계급의 영국 남편을 만나 영국에서 살며 25년 동안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으로 본격적인 노동 계급 탐구서다. 한국의 꼰대와 비슷한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저씨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며 오늘날 영국사회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방인의 시선이라 더 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 객관성을 유지하기 쉬운 법이니까.
영국에 산지 햇수로 10년 차. 강산이 한 번은 변할 이 시간 동안 나는 영국을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당당히 "많이 알게 됐다"라고 답할 수가 없다. 영어실력이 모자라니 친구를 사귀어도 대화는 겉만 핥다 끝나기 일쑤였고 그 탓에 그들의 생각과 속사정까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뉴스를 읽어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영국 노동계급 아저씨들의 실상을 읽다 보니 머릿속에 전구가 환히 켜지는 것 같았다. 영국은 이런 나라구나, 영국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문화를 갖고 있구나를 배우며 키득거렸다.
"아저씨들이라고 해서 다 결이 같은 한 덩어리는 아니다. 노동 계급 아저씨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서 대충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브래디의 말이다.
책에는 실로 다양한 아저씨 군상이 나온다.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민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아저씨, 젊을 때는 술통에 빠져 살다가 나이 들어 친구와 과일주스를 갈아 마시는 아저씨, 팔뚝에 엉뚱한 한자로 타투를 새긴 아저씨, 몸이 아파도 NHS(영국 무상 의료시스템)를 믿고 사립병원에는 안 가는 아저씨 등등. 투박하고 자기주장 강하지만 좀 귀여운 아저씨들의 이야기에 나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한발 더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