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다방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장편 소설

by 영글음

김금희 장편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


책을 읽으며 빛바랜 사진이 생각났다. 젊은 시절의 내 아버지가 아기인 나를 안고 있는 장면과 내가 동생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사진이다.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거라 배경은 분수대 앞 붐비는 사람들과 펜스가 전부이지만 부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장소는 창경원, 시대는 70년대 말 즈음이다. 창경궁이 아직 창경원이었을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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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까지 목동과 잠실에서 살았던 나는 커서도 경복궁에나 몇 번 가보았을 뿐 창경궁이나 창덕궁, 덕수궁 같은 곳은 미지의 세계라 여겼다. 모르니 관심을 둘 수도 없었으리라.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단박에 창경궁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데려갔다. 특히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변화해 온 창경궁의 역사와 복원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웃포커싱되어 있던 사진 속 배경을 조금은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주인공 영두가 창경궁 내 대온실의 수리 복원 과정 기록을 담당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는 크게 네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1) 현시점에서 일어나는 대온실 수리의 과정, 2) 영두의 사춘기 과거, 3) 안문자 할머니가 마리코였을 시절, 4) 창경궁의 역사 등.


저마다 다른 시대 배경을 가진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구조를 선보이고 있지만 작가가 부려 놓은 문장의 세밀함에 감탄하며 나는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그 덕에 정확히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는, 창경궁과 가까이 있다는 종로구 원서동, 가회동의 어느 골목을 함께 누빌 수 있었다. 초입에 있었던 낙원하숙의 외관을 상상하며 그곳에서 느꼈을 영두의 외로움과 억울함도 같이 만났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나를 “안송팔”이라 부르던 상고 다니던 교회오빠가. 초등학교 때 네 명이서 같은 수영대회에 나갔는데도 치맛바람 세지 않은 엄마를 두었기에 나만 상을 받지 못해 억울해하던 상황도. 교집합이 없는데도 등장인물을 따라 비슷한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 이것이 ‘소설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두에게는 대온실 보고서를 쓰며 잊으려 애썼던 인생의 순간을 맞닥뜨리고 안문자 할머니의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순간이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복원과 수리가 그녀에게 보다 평안한 삶을 향한 문이 되어줬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작가 김금희에게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이전에 편집자이던 시절, 본인과 가족에게 일어났던 불행 앞에서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전문서를 만들며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다고 김금희는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하지만 나는 궐내에 흙구덩이를 내며 기세 좋게 쏟아지던 비와 비가 그치면 별안간 폭우의 에너지가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오후의 말간 풍경을 만들어냈던 순간을 기억했다. 다른 건 지우고 그것만을 기억했다.”


20년 가까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고백한 그 순간 덕분에 <대온실 수리 보고서>와 같은 소설이 내 곁에 와닿은 것 같다. 이것은 ‘소설가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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