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안녕!
우아, 어머니가 그리신 모란도 정말 예쁘다. :)
같은 꽃을 그렸는데도 색감이 다르니 전혀 다른 매력이 느껴져. 엄마가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더 따뜻한 온기가 배어 있는 모란도야. 히히.
삿포로 여행도 정말 재밌었겠다! 마치 내가 여행하는 기분이었어. 너의 시의적 표현이 가득한 여행 에세이. 너무 좋아 정말 >_<
너의 글과 사진으로 구경하는 삿포로를 보고 있으니, 문득 우리가 만났던 포틀랜드가 떠오르더라. 토코나 메로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진만으로도 느껴져. (ㅋㅋ) 안개와 함께 차분하게 내려앉은 그 정적이 참 좋아. 일요일 아침, 혹은 명절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고요랄까.
지난주는 미국의 땡스기빙 주간이었어.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미국의 추석 같은 날이잖아. 한 해의 수확과 축복에 감사하는 날. 너는 일본이지만, 땡스기빙 잘 보냈니?
미국에선 칠면조 요리, 크랜베리 소스, 매시드 포테이토, 펌킨 파이가 전통 음식이라고 들었어. 나는 땡스기빙을 직접 챙기진 않지만, 11월이 오면 마트나 거리 곳곳의 장식들로 ‘풍성한 가을이구나!’ 하는 분위기를 자연스레 느끼게 돼.
생각해 보면 미국은 10월엔 핼러윈, 11월엔 땡스기빙, 12월엔 크리스마스가 있어 매달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그런지 연말은 늘 기다리는 설렘이 있는 것 같아. 매달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이벤트가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야.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서 (ㅋㅋ) ChatGPT에게 물어봤어.
정체성(Identity)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개념으로, 개인이 자신을 이해하고 정의하는 방식과 사회가 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이 모두 포함된다고 하더라고. 개인적, 사회적, 역할, 심리학적 정체성 등 다양한 시각에 따라 ‘나’라는 정의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런 세부적인 틀로 나를 구분하며 살아본 적이 거의 없던 것 같아. (ㅋㅋ) 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크게, 뭉뚱그려 나를 정의하며 살았거든. 예를 들면, ‘나는 둔하면서도 예민한 사람이야.’ ‘나는 F형 인간이야.’ 같은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렇게 나를 단정 짓는 것 자체가 근시안적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정체성은 현재진행형인데, ‘나는 원래 이래’라고 고정해버리는 건 어쩌면 나를 스스로 가두는 일이니까.
-이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나를 제한하는 틀의 상당수는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 나의 귀엽지만 조금 부끄러운 과거 하나 얘기하자면, 초등학교 때 내 장래희망은 아나운서였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꿈이 대학 진로 결정에도 은근히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해! ㅎㅎ) 그런데 그 시절의 나는 굉장히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였거든. 내가 상상하던 방송인—대범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용기 있는 사람—과는 정반대였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소극적인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선을 그어버렸던 것 같아. 이루지도 않았는데 미리 체념한 거지.
10대, 20대, 30대를 지나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지고, 미국으로 이주하며 친구들도 많이 바뀌었어. 환경이 변하고 나도 변해왔는데, 왜 그동안 ‘내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고만 생각해 왔을까, 싶더라.
뚜렷한 정체성이 주는 힘도 있지만, 결국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경험과 사람, 환경이 주는 변화를 받아들이면 더 다채로운 정체성을 가진 ‘나’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아이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처럼 나의 정체성을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는 거지. 어차피 세상은 바뀌니까, 나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면 되는 거고.
지난 너의 편지에서 일상을 벗어난 생활을 하며 '일상 속에 가두어둔 나'를 깨달은 것과 같이 말이야. 우리가 가두어둔 스스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루틴을 재조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듯이.
루틴과 습관도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그 일상 속에 나를 가두어 두면 안 될 것 같아.
루틴을 만들려면 결국 ‘행동하는 나’가 먼저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운동해야지’보다는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야’라고 먼저 나 자신을 정의해 두는 게 훨씬 도움이 되더라. 솔직히 말하면 운동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운동 안 할 이유는 정말 끝도 없이 생기거든. ㅋㅋ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기대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워져.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수많은 수식어와 이미지 사이에 실존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듯, 내 이력서에 나열된 어울리지 않는 요소 사이사이에 나의 진짜 모습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지금의 나로 수많은 내일을 향해 건너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이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의 이소은 작가님, 기억하지? ‘서방님’을 불렀던 그 가수 이소은. 어린 시절 가수로 살았고, 미국에 와서는 변호사에 도전하고, 국제기구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예술 관련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어. 얼핏 보면 모두 다른 경험 같지만, 그녀의 길은 단단히 이어져 있고 각 경험이 서로를 비추는 것 같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와 비슷하게 늘 새로운 걸 갈망하고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 그게 참 멋있어. 그리고 나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기고. ㅎㅎ
우리는 각자 다른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지만, 그 안경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도 있어. 잠시 그 안경을 벗고 상대방의 안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볼 때에야 비로소 그 안경의 주인이 귀여워지지.
가만 보면, 이런 나도 꽤 귀엽다.
-선미 <이름 모르는 낯선 이의 화이팅에도 가끔 힘이 난다> -
어느새 12월이야. 조금만 더 지나면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데.. 다가오는 해는 내게 참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아.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업데이트’해보고 싶은 욕구가 너무너무 커. 그동안 내가 쓴 안경 때문에 가두어둔 ‘나’를 꺼내서 리셋 버튼을 눌러보고 싶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원래 그러한 사람이 아니니까.’ 대신 ‘나는 지금 이런 사람으로 업데이트 중이야.’
라고 생각하는 나. 한 살 더 먹어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갈 미래의 내 모습이 귀여워하며... ^^ 진짜로. 빵실베이킹 하시는 분처럼, 그 과정을 즐거워하면서 12월을 보내볼께.
연말이라 바쁠 텐데, 따뜻하고 좋은 시간들 가득가득 채우길 바라 :)
이번 편지가 조금 늦었지, 기다려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또 편지할게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