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은 안된다

줄 없는 외출은 가출, 집 나가면 개고생.

by 소녜

우리 동네에는 참 개들이 많다.


외곽이고 시골이라면 시골(남이 시골이라고 하면 화나지만 내가 시골이라고 하는 건 괜찮은 정도의 동네다)이라 그런지, 동네 자체에 개 키우는 집이 많다. 다 주택이고, 마당이든 차고든 밭이든 개들이 활개 칠 공간을 가지고 있는 집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전원생활의 로망'에 개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인지, 개가 정말 많다.


우리 옆집만 해도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좀 더 아랫집에는 장모 치와와인가, 털 많고 귀여운 녀석들을 여섯 마리 정도 키우는 집도 있다. 윗동네에는 호두보다 큰 골든 리트리버도 살고, 또 윗동네 어디엔가는 대빵 큰 시베리안 허스키도 있다.


놀라운 건, 그 아이들이 돌아다닐 수 있게 풀어놓는 집이 꽤 있다는 거다. 산책 가라고 풀어주는 개 중 나이가 많은 골든 리트리버 할아버지는 심지어 우리 집 담을 넘어 호두를 보러 오기도 하고, 다견가정의 치와와들은 사람이 지나가면 왕왕대며 나왔다가 내가 가만히 서있으면 쪼르르 다가와서 배부터 뒤집기도 한다. 우리 동네 입구의 강아지는 너무나도 호전적이어서 지나가는 사람에도 짖고, 호두를 만나면 꽁무니를 물 태세로 으르렁대며 다가와 호두랑 도망치거나 큰 소리로 가라고 한 적도 몇 번이나 있다.

IMG_7248.JPG 우리 집에 월담해온 나이많은 친구가 마냥 반가운 호두 녀석. 저 친구는 주인아저씨가 부르니 홀랑 돌아가버렸다.


저 집 개들은 저런가 보다, 호두랑 싸움만 안 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볕 좋은 어느 날 낮, 동생과 마당에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호두랑 놀고 있었다. 그날 손님맞이를 한다고 아빠는 음식 장만을 하러 외출해있었고, 우리는 대야에 물을 받아주고 물장난 치는 호두 구경을 했다. 그러다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대문으로 나가는 방법 하나와, 차고로 향하는 문-차고 문을 통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 호두는 차고 문이 열리면 누군가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계단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대기한다. 이번에도 쪼르르 가길래 아빠가 왔나 보다, 하고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IMG_7469.JPG 대야에서 물장구 치는 중. 이때는 아주아주 평화로웠다.

그런데 아빠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왜지, 하며 계단께로 갔는데 중간 문이 열려있었다.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는지 차고 문이 열리고 부는 바람에 중간문이 열린 것 같았다. 신난 호두는 그새 밖으로 나가 아빠 차 옆에 서있었다.


마음이 다급했다. 호두야, 이름을 외치며 다가갔다. 호두는 갑자기 신이 났다. 내가 따라나가니 산책 가는 줄 알았는지 어쨌는지, 멀리 달아났다. 평소에 산책 가던 길도 아니고, 윗동네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생을 불렀다. 잠옷과 슬리퍼 바람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호두는 오르막을 올랐다. 나는 동생에게 간식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러고서는 호두를 향해 마구 달렸다. 호두는 잡힐 듯 말 듯 계속 멀어졌다.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로 올라갔다. 공사도 여기저기서 하고 있었고, 개가 있는 집도 꽤 보였다. 호두는 모든 곳에 기웃거렸다. 내가 호두 부르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동생 손에는 간식이 들려있었다. 호두가 다가왔다. 간식을 먹는 동안 목줄을 잡아야겠다 하고 손을 뻗었다. 그새 달아났다. 간식만 입에 물고 또 뛰기 시작했다. 아빠한테 리드줄 가져와달라고 하라고 하고서는, 호두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쫓아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대로 멀리멀리 가서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마구잡이로 뛰어가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차에 치이면 어떡하지. 다른 개랑 싸움에 붙으면 어떡하지. 호두가 그 과정에서 다치거나 다른 개를, 혹은 사람을 다치게 하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에 목이 메어왔다.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전략을 바꿨다. 잠깐 숨었다가, 호두가 아직 보이는 곳에 있는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호두를 불렀다. 호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우리 집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호두가 따라왔다. (!!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 집 골목으로 꺾었다. 호두는 나를 쌩 지나쳐 아래 골목으로 뛰어내려 갔다. 기분이 또 울컥 올라왔다. 그때 마침 아빠가 리드줄을 들고 나왔다. 호두는 우리 집에서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담벼락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빠는 나보고 쫓아가지 말라고 했다. 혼내는 중저음 목소리로 호두! 하고 불렀다. 호두가 돌아봤다. 나는 다시 호두에게 뒤통수를 보이고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호두도 따라 들어왔다. 문을 닫았다.

Dog Running Down Road.jpg 너는 신났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났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두는 신나서 마당에 몸을 부비고 난리였다. 기분이 부루퉁해졌다. 바보 녀석.


그 날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고 불안해진다. 차고로 가는 중간 문이 잘 닫혀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다른 집은 어떻게 개를 풀어놓는지. 불안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는 걸까? 다른 개랑 싸움날 걱정은 안 되나? 차에 치일 걱정은? 부모님도 내가 대학을 가고 나 가살 거나 늦게 들어올 때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독립해야 하니 당연한 수순 같지만, 강아지는, 반려동물들에게 줄 수 있는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게 우리 강아지에 대한 믿음의 문제인가? 아니면 당연한 걱정과 책임의 문제인가?


지금의 내 마음으로는, 울타리나 줄 없이는 호두를 내보내 줄 수는 없다. 불러서 바로 오는 것도 아니고, 놔두면 한도 끝도 없이 멀리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더욱, 호두가 갈 수 있는 곳, 가면 안 되는 곳에 대한 범위가 명확히 서기전까지는 절대 안 된다는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울타리 안에서 그리고 리드줄 범위 안에서 재미나게 놀아보자 호두야. 집 나가면 개고생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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