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첫걸음

2017년 봄, 늦었지만 의미 있었던 동행.

by 소녜

나와 호두의 첫 산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이제는 조금 시간이 지나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올해 봄이었나, 날이 선선했다. 나는 그때까지 호두 산책에 같이 나가본 적이 없었다. 가끔 내가 없는 주말 낮, 동생과 아빠가 산책시키고 왔다는 얘기만 듣고, 나는 마당에서 같이 놀아주는 정도였다. 힘도 셌고, 마당에서도 컨트롤이 안되니 나갔다가 목줄을 놓칠까, 무언가를 잘 못 주워 먹을까, 지레 겁만 먹고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왜였을까, 산책을 시켜보자고 용기가 났다. 아마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주말 저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쩐지 부모님이 안 계시면 용감해지는 타입인 것 같다. 어차피 호두 밥을 챙겨주러 집에 얼른 들어가야 하니, 가서 밥 주는 김에 '한 번 데리고 나가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두는 간만의 산책이라 매우 흥분했던 것 같다. 일단 마당에 풀어놓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가슴 줄과 리드 줄을 들고 나왔다. 호두를 놀아줄 때면 으레 발톱에 할퀴어지기 일쑤라, 옷도 단단히 입었다. 어깨에는 유럽여행 갈 때 누가 못 훔쳐가도록 메고 다녔던 몸에 딱 붙는 작은 크로스백과, 그 안에 간식을 담아 나왔다.


평소와 같이 호두는 마구 달려들어 내 옷을 긁어대고, 가방의 냄새를 맡고, 리드 줄을 보고 날뛰었다. 앉아,를 여러 번 외쳤지만 호두는 앉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앉았다. 내가 몸을 좀 낮추면 호두도 맞춰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호두는 아랑곳없이 내 목덜미 냄새를 맡고, 옷에 털을 비비고, 펄쩍펄쩍 날뛰며 나를 밀어댔다.


다행히 잠시 후 호두도 힘이 조금 빠졌는지 옆에 앉았다. 가슴줄은커녕, 목줄에 리드 거는 것만으로 성공이겠다 싶어 목줄을 잡으려 손을 뻗으니 또 금세 일어나 나를 밀쳤다. 몇 번의 밀당 끝에, 목줄에 걸려있는 고리에 리드 줄을 걸었다.


잠깐 어리둥절하더니, 신나서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대문을 나갔다. 집 앞 전봇대를 발견했다. 영역표시를 했다. 조금 더 가서 나무를 발견했다. 영역표시를 했다. 돌이 있었다. 영역표시를 했다. 땅에 젖은 무늬가 있었다. 냄새를 맡았다. 쑥을 발견했다. 냄새를 맡았다. 풀밭을 발견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 한참을 빙글빙글 돌며 두리번대더니 용변을 봤다. 와우.

첫번째 산책2.jpeg 너무 신나서 요리조리 왔다갔다, 보채기 대마왕이었다.

호두는 이런 식으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너무 당겨서 목을 켁켁거리면서도 쉬지를 않았다. 간식이나 물로 달래 보려, 진정시켜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잔뜩 신나 있는 호두를 보니 한편으로는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그동안 얼마나 나오고 싶었으면, 이렇게 신나 할까.


컨트롤할 자신이 없기에 여기저기 누가 될까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래, 너도 자주 나와봐야 적응을 하지. 나도 너를 데리고 나오는 연습을 해야 더 잘 보폭을 맞추지. 싶었다.


그 후로 틈이 나면 산책을 나오거나 어두워도 후레시 켜놓고 마당에서라도 놀아주다 보니 조금은 순해졌다. 산책이 신나는 건 여전한지 항상 나를 끌고 다니고, 때로는 나를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고 눈 마주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부르면 멈춰 서서 돌아보거나 시원한 그늘에 주저앉아 몸을 뒤집고 요리조리 애교를 부릴 때면 아이고~하며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아직 도그워크 마스터가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첫 산책에 비하면 많이 왔다 싶어, 뿌듯하다.


호두야, 앞으로도 재미나게 걸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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