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Jan 01. 2022

서른이 뭐라고

빠른 년생이 서른을 맞이하는 기분에 대하여

나는 빠른 년생이다.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엔 “너 한 살 어리네! 나한테 언니/오빠라고 불러!”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일고 여덟 살의 나는 그게 너무 분했다. 싫어!라고 외치는 것 말고는 뭐라 할 말도 없으면서 괜히 씩씩대곤 했다.


두 번째 고비는 대학교에 올라가고 시작됐다. 학기 초 쉬지 않고 생겨나는 온갖 뒤풀이에서 민폐가 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빠른 년생 친구들과는 오늘 어디 간대? 거기 검사하는데... 하는 고민을 함께 안고 불안해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용인에서 통학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딸이 매일 서울로 가는 경험이 처음인 부모님은 통금을 열 시로 걸어두셨다. 차가 막히는 걸 고려하면 넉넉히 여덟 시엔 출발을 해야 했다. 1학년 때 알게 된 동기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친구가 몇 없는 건 이 탓일지도 모른다.


빠른 년생이라 겪는 고초는 사실 이게 다였다.

심지어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는 득으로 작용할 때도 많았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이를 묻는 질문에 빠른 93이라고 대답했더니, 돌아오는 건 사회생활할 때는 빠른 같은 거 없다는 일침이었다. 핀잔을 연타로 몇 번 맞고 나니 빠른 이라는 수식어는 나를 설명하는 문장에서 빠지게 됐다. 덕분에 괜히 1년 번 느낌, 남들보다 더 빨리 돈을 벌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실제로 같은 학번 친구들 사이에서도 취업이 빠른 편이었는데, 나이가 더 어린 셈이 되면서는 더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왜 그 응애 시절에 더 놀지 않고 이렇게 성실히 돈 벌 준비를 했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어린 신입사원 여자애 포지션을 달고 다녔더랬다.


그러다 서른이 어쩌고 소리를 듣게 된 건 2020년 말부터였다.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죄다 울상이었다. 이제 정말 20대가 끝이라며, 왜 자기가 벌써 30살이어야 하는지 이유를 대라며 투정을 부렸다. 주변에서도 이제 서른이네~ 하며 놀리는 말투로 건네지는 추임새들이 만연했다. 하지만 그 투정이나 놀림은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스물아홉이 되는 거였으니 말이다. 너도 이제 서른이지? 하는 조롱에는 아닌데요, 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서른 fever를 겪지 않고 2020년 말과 2021년 초를 보냈다.


어느덧 2022년이 와버렸다. 하지만 2020년 말처럼, 2021년의 말은 내게 그리 나이로 혹독하게 굴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들은 이미 서른에서 서른하나가 되는 셈이었고, 새로 사귄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이라, 나이를 굳이 묻지도 알고 있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질문들이 있긴 했다. 이제 정말 서른이 되는 기분이 어때? 라며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 친구들이 2021년 내내 서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년이 서른이 아니었지만 이미 서른인 셈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바라본 친구들의 서른은 사실 스물아홉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취업한 누구는 갓 사회초년생의 삶을 사는 것뿐이었고, 원래 일 하던 누구는 짬바가 1년 치 더 더해졌을 뿐이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어서가 아니라, 스테이지가 달라져서 생긴 변화였다. 누구는 스물아홉에 겪고 누구는 스물넷에 겪었으며 누구는 서른넷에야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게다가 서른이라는 숫자는 사실 너무 작다. 백세 시대 인생 중 삼분의 일도 살아내지 못한 것이 셈이니 말이다. 중학교 시절엔 너무 멀어 보이던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지금 보면 너무 어려 보이는 것처럼, 지금의 내 나이도 마흔, 쉰, 예순의 내가 보기엔 응애일 것이다.


올해, 서른이라는 나이보다도 내게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사회생활 연차이다.


2016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내가 올해에는 어느덧 7년 차 직장인이란다. 중간에 딱히 공백기간이 있지도 않았으니 정말 오롯이 만 육 년을 채운 셈이다. 육 년. 사회생활을 다시 학생 때로 비교한다면 이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넘어가는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초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른 건 맞을까? 머리만 굵은 게 아니라 생각도 굵어지려면 어떤 걸 해야 할까. 짜인 커리큘럼도 없는 앞으로의 인생에, 나는 어떤 조합의 경험들을 엮어가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