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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Aug 13. 2021

후추에도 정량이라는 게 있을까

취향껏이 정량이 되는 후추 매직

독립을 하고 나만의 부엌을 꾸리면서 가장 먼저 산 식재료 중 하나는 통후추다. 이미 다 갈아져서 후추라고 뻔히 쓰여있는 레트로 한 틴캔에 들어있는 그런 후추가 아니라, 통 자체에 그라인더가 달려있어서 드륵드륵 갈아 쓸 수 있는 통후추.


원래는 그라인더를 가지고 싶었다. 좀 더 멋지게 그럴싸한 그라인더. 하지만 그런 건 으레 사이즈가 크다. 그럴싸하니 여러분 여기 보세요 하고 진열해두거나, 혹은 짜잔! 하고 꺼낼만한 서랍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1인 가구에게 딱 맞춰져 설계된, 하지만 때로는 뭔가 부족한 듯한 우리 집은 그럴싸한 그러인더를 둘만한 그럴싸한 선반도, 서랍도 없다.


아무튼 그럼에도 굳이 통후추를 갈아먹는 여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취향의 영역을 늘리고 싶은 나의 허세 때문일지도 모른다.


통후추의 멋짐을 알게 된 건 호주로 교환학생 갔을 때다. 그전까지 내게 후추란 그저 집에서 수육 삶을 때 잡내를 잡으려고 엄마가 월계수 잎이랑 커피가루 몇 알이랑 같이 집어넣던 알갱이였다. 아니면 고운 흰색과 회색과 까만 입자의 조합으로, 설렁탕이나 곰탕이나 혹은 가만히 놔둬서 식으면 껍데기가 생기고 마는 크림수프를 먹을 때 톡톡 치는 그런 거.

그런데 호주에 가니 뭔가 달랐다. 물가도 달랐고 그래서 나의 씀씀이도 달라져서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느 카페에 가서 샐러드를 하나 시키든 파스타를 하나 시키든, 종업원들은 빼놓지 않고 내게 후추를 원하냐고 물었다. 유주 라잌 섬 페퍼?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으니 슈어! 를 외치며 드륵드륵 갈리고 있는 후추를 보고 있자니 한층 업그레이드된 식경험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큰 알갱이가 가끔 음식과 함께 씹히면 터지는 식감도 괜히 감격스러웠다. 왜 그렇게 콜럼버스 시절에 향신료에 환장했는지 이해가 절로 됐다.


아무튼 그때 시작된 나의 후추 사랑은 아직까지도 이어진다. 지금 하는 게 무슨 요리이든 상관없이 후추를 듬뿍 치면 괜히 풍미와 격이 올라간 느낌이 든다. 호주에서의 경험이 괜한 허세를 불러일으켰는지 혹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추는 너무 맛있다.


게다가 후추에 대한 이런 사랑은 나만의 것도 아닌 게 분명하다.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고자 레시피를 찾을 때면 후추의 계량은 대부분 한 단어로 귀결된다. 취향껏.

티스푼과 밀리리터 단위의 정교한 레시피에서도, 소금은 한 꼬집 물엿은 한 바퀴식으로 대충 레시피에서도 후추는 꽤 항상 취향껏,으로 집계된다. 마치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단위의 계량인가 싶을 정도다. 계량의 사이언스인 요리라는 과목에서 후추는 정량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재량과 취향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슈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후추를 그람으로 달아 정량만큼만 뿌리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후추는 약간 손이 저릿해올 만큼 충분히, 가 바로 정량. 악력이 세진다면 정량이 늘어날지도, 그래도 아무튼 좋은 게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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