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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Apr 01. 2021

좋아하지 않던 게 좋아지는 요즘이야

그래 아마 평생 싫어하는건 없을지도,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꽃처럼 무용한 선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기껏 잘 살고 있는 꽃을 꺾어다가 비닐을 잔뜩 넣어 싸매 주는 선물.


받아서 화병에 꽂아봤자 잔뜩 물러서 시들어버리고, 거꾸로 매달아 말려봤자 좀 지나면 가루가 되어버리고. 기왕 선물 받은 거,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결국엔 어떻게든 쓰레기통으로 향해야 하는 운명의 슬프고도 귀찮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선물 받은 날 들고 다니기는 얼마나 번거로운지. 큰 가방을 들고 다녀도 도무지 잘 들어가지 않고, 오래 시들지 말라고 아래에 물주머니라도 달아줬다면 물이 샐까 봐 더더욱 가방에 넣을 엄두는커녕 아무렇게나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선물만이 아니었다. 그냥 산에 들에 피어있는 꽃도 그냥그랬다. 목련은 기껏 펴놓고는 잔뜩 꺼멓게 변해버린 채로 툭툭 떨어지기나 하고, 벚꽃은 예쁘지만서도 사람을 잔뜩 몰리게 만드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모가 사는 완도에 놀러 가서 엄마가 어머 동백이 폈네, 라며 좋아할 때도 그냥 빨갛고 작은 꽃일 뿐인데 뭘 매번 저렇게 호들갑이냐 싶었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껏 몇 시간 올라가 봤자 또 몇 시간 걸려 내려와야 하는데 뭔 짓인가 했다. 다리도 아프고 땀도 나고 벌레도 많은데. 가끔 공중에 둥둥 공중부양해있는 벌레를 눈앞에 들이닥쳐서야 뒤늦게 알아채면 악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턱 막힌 채로 나오지도 않았다. 어른거리는 날파리는 얼마나 많은지. 그냥 야호 나 한번 하고 내려오려고 굳이 이런 고생을 하는 건가 싶었다. 게다가 가족끼리 같이 등산을 가면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나는 뒷전이었다. 오 학년 때였나, 언젠가 한 번은 잔뜩 토라 진채로 혼자 저 앞에서 내려가다가 도심에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예쁜 산 비둘기를 발견하고 잰걸음으로 다가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뾰족한 돌에 눈썹이 찍혀 산이 떠내려가라 울었지. 지나가던 등산객 아주머니가 나를 뒤집어 뉘이고는 가방에서 (어쩜 그렇게 준비성이 철저하신지!) 시원한 알로에 조각을 꺼내 지혈을 해주셨다. 저 멀리서 천천히 내려오던 아빠는 그게 나인걸 알고는 얼른 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거의 산을 다 내려온 때라 망정이지, 정상 근처에서 그랬으면 나랑 동생을 챙겨 내려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응급실에 가서는 눈썹을 두 바늘인가 꼬매고, 마취약 때문에 퉁퉁 부은 한쪽 눈이 싫어 괜히 안대 주시면 안 되냐고 졸라나 봤었다. (귓등으로도 안 들으심)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숨찬 운동이 다 싫었다. 아니 그냥 운동이 싫었다. 지금도 아주 깡마르진 않았지만, 초등학생의 나는 아주 푸짐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몸에 대한 죄책감이 없을 어릴 때라 자각은 없었지만, 아빠는 운동을 하라고 자주 잔소리를 했고 내가 운동을 가지 않는 날에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가끔 할머니가 오시면 피자를 시켜주셨는데 다 아빠 몰래였다. 몸이 저래서 어쩌냐며 왜 고기반찬을 했냐고 핀잔을 줬다. 그땐 별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내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내 몸을 보는 습관이 자꾸 들고, 몸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문득 떠오르는, 그리고 절대 잊지 못 할 것 같은 장면들이다.

아무튼 사람이란 게 또, 남이 하래서 하면 얼마나 하기 싫은지. 그 당시 헬스장에 가면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러닝머신만 슬렁슬렁 걷고 시간을 채우고 오곤 했다. 체력장도 싫었다. 특히 오래 달리기. 단거리 달리기는 매번 꼴찌를 맡아뒀으니 굳이 싫어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내가 오기를 부리면 꼴찌는 안 할 수 있었다. 목구멍이 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도 헉헉대며 계속 뛰었던 기억. 역시 남이 하래서 그런가 너무 싫었다 싫었어.


그런데 요즘은 꽃이 좋다.

공원에 밤 산책을 나가 노란 산수유가 여기저기 피어있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설렜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벚꽃나무 군립(?)이 눈에 띄니 짬을 내서 점심 산책을 가고 싶었다. 꽃시장이 근처에 있던 전 직장에서는 봄이면 점심도 건너뛰고 프리지아를 한단 사러 다녀오곤 했다. 괜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아무 날도 아니면서 작은 한 다발을 건네기도 하고, 겨울에 놀러 간 남부지방에선 동백나무의 빤딱한 잎과 새빨간 꽃을 보며 엄마를 호들갑 떠는 말투를 더 올린다.


등산도 조금씩 좋아진다.좀 더 멀리 능선을 구경할 줄도 알게 되고, 올라가면서 느껴지는 엉덩이 당김도 좋다. 내일 잘 못 앉을 정도로 엉덩이에 근육통이 오면 참 뿌듯할 텐데,라고 생각할 지경이다.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같이 걷는 마음도 좋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약간 가파른 구간도 괜찮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진짜 어색하지 않은 사이인 거니까. 그런 사이인걸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다. 좀 더 짬이 차면 나도 알로에를 들고다니는 등산러가 될 수 있을까.


달리기도 괜히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러닝머신 위에서 템포 맞는 음악이 나오면 속도를 음악에 맞춰 달리기도 한다. 영 숨차지 않게 숨 쉬는 타이밍을 잡지 못하던 나였는데, 딱 맞는 비트와 함께라면 숨쉬기도 어렵지 않다. 실내에서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공원 러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에 몇 킬로씩 뛰지는 못하겠지만 적당히 한 바퀴 돌고 쉬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요새는 이렇게 자꾸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 자꾸자꾸 좋아진다. 사실 제대로 좋아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싫어했나 싶기도 하다.

지금도 나한테는 싫은 것들과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잔뜩 있다. 거진 대부분은 이미 싫어해서 아예 접점을 차단한 것들이다.

언젠가 그것들이 또 좋아질 날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게 하나 더 늘어난 셈이 되겠지.


지금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좋아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는 것도 좋다. 그냥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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