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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Jun 02. 2019

잠의 힘을 믿으시나요

나는야 잠 신교자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통 잠을 안 자는 어린이였다. 엄마가 퇴근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퇴근하고 뻗은 엄마의 눈을 집게손가락으로 억지로 벌려가며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댔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엄마가 여태껏 나를 사랑해주신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정도. 엄마 미안했어요.)


엄마가 무슨 어린애가 이렇게 잠도 안 자냐며 엄마의 엄마에게 투정 부렸을 때, 나의 외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더란다.

거슥, 맨- 안 자고 하능거 보닝께 나중에 다 커서 맨날 잘 거여


누가 알았겠나, 외할머니에게 예지적 능력이 있을 줄이야. 나는 정말 잠이 많은 사람으로 커버렸다.


이런 날이 있었다.


중학교 다닐 적, 시험기간이었는데 책상 앞에 앉아있으려니 잠이 쏟아졌다. 몸도 눈도 무겁겠다, 오래 잘 생각도 없으니 책상에 기대 길게 엎어졌다. 그러고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등을 철썩철썩 때렸다. 아빠였다. 잘 거면 똑바로 누워 자지 뭐하냐고 복식 발성으로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 그럼 아예 편하게 자고 일어날까 싶어 누웠다. 잠이 들랑 말랑 할 때쯤, 벌써 자냐는 소리가 귓바퀴를 맴돌았다. 엄마였다. 누워있지도, 엎어져있지도 못하겠으니 일단 일어났다. 화장실에 갔다. 문을 잠그고, 그 당시 화장실 안에 있던 발판에 쪼그렸다. 화장실 문에 기대 잠을 잤다.


이 방법은 머지않아 엄마가 그러고 있는 나를 알아채고 놀림거리가 되면서부터 쓸 수 없는 방법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잠은 정말 내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다.




간혹 이런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땐 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


아깝다니.


잠은 내게 피할 수 없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잠이나 자고 싶다, 라는 말이 하루에 14시간은 생각난다. 아무 방해 없이 푹 자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시간인지. 푹 잘 잔 하룻밤이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뿐해지는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거다. 하루 종일 다사다난해서 신경이 많이 쓰이던 날도, 너무 재미나게 놀아서 오늘 하루가 끝나는 날도 잘 씻고 누워 깨끗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으면 온몸이 노곤 노곤해지면서 사르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고민이 있어도 그 상태가 되면 에라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서 내일 생각하자- 하는 마음이 된다. 푹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말끔하고 생각도 더 잘 정리되는 기분.


물론 오늘 있었던 일이 꿈에 나올까 잠들기가 무서운 날도 있다. 잠들만하면 이불킥할만한 일들이 계속 떠오르는 날들도 있다. 이런 날 차분해지는 향의 룸 스프레이를 뿌리고, 요가 클래스에서 배운 지 얼마 안 된 우짜이 호흡을 연습해본다. 코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코로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의 길을 느껴본다. 마음이 달래 지는 건 모르겠지만, 몸이 달래 지면서 스르르 잠에 든다.




좋아하는 웹툰 중에, 이말년 작가의 ‘잠 은행’ 시리즈라고 있다.

이말년 잠은행 시리즈 중


사람이 사는 동안 꼭 자야 하는 미니멈 잠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걸 미루면 명줄이 계속 줄어든다는 설정. 너무 그럴싸하지 않은가! 며칠은 고사하고 몇 시간만 덜 자도 일주일 내내 피곤하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다 명줄 짧아지겠다는 생각이 물씬. 잠은 정말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다가도 거꾸로 어렸을 때 “기상력”을 다 써버린 탓에 지금 “수면력”을 몰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다 몰아 써버리지는 않아야 할 텐데 문득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여튼 잘 자는 지금의 내가 나는 참 좋다. 친구의 출장에 따라 싱가폴에 갔을 때, 친구가 출근 준비로 드라이기를 써도 꿈쩍도 안 하는 내가. 비행기를 타도 별일 없다면 서너 시간 거뜬히 자는 내가. 낮잠을 몇 시간 자도 밤잠도 푹 자는 내가 좋다. 햇볓을 많이 쬔 날이라면 날이 좋아서, 비가 내려 우중충한 날이라면 날이 차분해서, 항상 잘 자는 내가 좋다.


언제까지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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