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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Jun 30. 2019

기왕 한 번 사는 거 폼나게

나만의 '폼'을 찾아서

운동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폼이다.


필라테스, 요가, 웨이트 등 정적인 운동뿐만 아니라 테니스, 골프, 배구, 수영, 농구 등의 동적인 운동들도 알맞은 폼을 배우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일례로 (내가 좋아하는) 서핑도 폼이 중요하다. 깊게 파도를 헤치는 패들링이 안되면 라인업도 너무 어렵고, 몸을 보드 위에 적정한 곳에 위치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패들링 해 잡은 파도도 나를 물속으로 처박기만 할 뿐이다.


사는 건 얼마나 다를까. 나는 폼 나게 살고 싶다. 물론 단순히 남들 보기 좋으라고, 그래서 나를 칭찬하라고만 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폼은 진짜 폼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사는 데 필요한, 배워야 할 폼이란, 운동에서의 폼처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폼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폼 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일도 잘하면서 애티튜드도 훌륭한 사람이야 말로 폼나는 사람인 것 아닐까.


요새 애티튜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은 잘하는데 애티튜드가 별로여서, 혹은 일도 못 하는데 애티튜드가 별로여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반대로 일도 잘하는데 애티튜드까지 훌륭해서 많이 배우고 싶고, 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럴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선배들에게, 후배들에게 어떤 ’애티튜드’의 사람인지.


사실 100% 자신은 없다.


내가 회사에서 생각하는 폼 나게 일하는 사람은, 프로페셔널 (일 잘함은 기본이다) 하면서도 동료와 서로를 모티베이트해줄 수 있는 긍정 바이브를 가진  사람이다. 마냥 밝고, 마냥 열심히 한다고 이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감정적이 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동료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랑 지내면 지낼수록,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본디지가 커질수록, 괜히 감성적이 되어버릴 때가 늘어난다. 굳이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괜한 TMI를 흘려 약점을 보인 건 아닐지, 이불킥하는 밤이 늘어만 간다.


그러다가도 ‘폼 나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심이 동시에 인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되는지에 대한 부러움이다. 자신이 믿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에 있다는 믿음이 그 사람을 더 강건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질투도 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믿으면 되지 않냐 싶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내 생각 내 애티튜드니 남을 바꾸는 것보다는 쉬울 텐데, 내 모습을 내가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어려워 또 마냥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걱정도 고민도 늘어간다.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폼나게 사는 것은 어떤 걸까.


일에서의 폼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믿는 바가 뚜렷하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크고 작게 노력하는 삶이 폼 난다. (내게는!) 개개인마다 가장 멋있는 폼이 다를 수는 있다. 각자 맞는 폼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왼발잡이와 오른발잡이 축구선수의 폼이 서로 다를 수 있고, 키가 크고 덜 큰 농구선수의 폼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 내가 원하는 삶에 맞는 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폼을 갖고 싶을까.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믿는 게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최적화된 폼을 연구해볼 수 있을 텐데.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직 어렵다. 너무 어렵다.


아, 정말 폼 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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