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Jul 14. 2019

향과 요가와 서핑과 chill

여섯 번째 한 글자 주제, 향.

무슨 운동 좋아해?


라고 물어보면, 지금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신 대답해줄 수 있을 정도로 그 답이 명백하다.

요가와 서핑.

사실 둘 다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하긴 하다. 왠지 좋아하는 운동이라고 하려면, 굉장히 잘하거나, 자주 하거나, 굉장히 오래 했거나.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하나는 만족해야 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또 뭐, 좋아하는 게 별거냐. 지금 내가 떠올렸을 때 가장 가슴이 뛰고, 실제로 하고 나서 만족감이 큰 운동이 이 두 개인걸.

두 운동 모두 한지 오래되었거나, (서핑은 시작한 지는 오래됐지만 너무 빈도가 낮다), 아주 자주 하거나, 아주 잘하지 못하지만, 생각해보니 두 운동에 아주 큰 공통점이 있다.

바로 향을 피운다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향을 좋아했다.

지난하고도 지난한 제사 타임에도, 향을 피우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끝이 다가온다는 느낌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건 문득 든 생각.) 아무런 종교도 없지만서도 절 가는 걸 꽤 좋아했다. 어렸을 때 잠깐 경주에 산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석굴암이든 불국사든 절로 나들이를 가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들러 나무 냄새 향냄새 가득 마시고 오면 머리가 상쾌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종교인이 아니니 절에서의 의미는 추측하기 어렵지만, 제사 때 피우던 향은 고인을 불러오는 길로써의 의미였을 테다. 그에 비해 서핑 샵이나 요가원에서 피우는, ‘인센스 스틱’ - 영어로 부르니 힙해 보이는 이 느낌!- 은 좀 더 “Chill”을 위한 것에 가깝다. 기분을 리프레시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데 도움을 주는 향이랄까.

실제로 요가를 할 때 스틱이 피워져 있으면 호흡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희미하게 퍼져나가는 실 가락 같은 향 냄새를 한껏 깊이 들여 쉰 숨 사이로 느끼고, 다시 끝까지 내뱉으면, 마치 그 숨이 내 몸을 지나가는 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날 좋은 날 서핑을 끝내고 한껏 늘어져 활짝 열린 슬라이딩 도어 앞 벤치에서 맥주를 마실 때도, 멀리서 풍겨오는 바다 냄새와 옅은 인센스 향이 온몸에 힘을 쭉 빼고

으-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 기분을 chill 하다는 말 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요런 바다 앞에서 맥주 먹고싶다, 캬!


그러고 보면 또 참. Chill이라는 단어 대체 뭘까, 싶다. 어렸을 땐 그저 춥다던지 오한이 든다던지 하는 뜻 밖에 없는 줄 알아서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이렇게나 chill 하고 싶을 수가.

기분이라도 내보자 싶어 향을 사볼까 고민하다가도 집에는 아직 룸 스프레이가 반은커녕 9/10병이 남아있고, 선물로 받아놓은 디퓨저니 향초니 꽤나 많아 기분 내보자고 인센스 스틱을 사재기하기는 아직 좀 찔린다. 괜히 막 사치 같고 그치?

그래서 결심했다. 어서 chilling 하러, 월요일엔 빼먹지 말고 요가를 가야겠다. 향 냄새도 듬뿍 들이마시고 관절 사이 마음 사이도 한껏 열어내고 와야지.

언젠가는 이런 곳에 가서도 요가하는 날을 꿈꾸며!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chillax 한 한 주를 보내길 바라며. 이번 주 글쓰기 과제도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