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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Jul 14. 2019

켜켜이 좋은 향이 배도록

여섯 번째 한 글자 주제, 향 



하반기의 목표 중 하나는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이상 요가를 가는 것이다. 하반기로 접어든 지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지나치게 이르지만 '아직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이미 여름 날씨로 접어든 지 오래라, 에어컨도 틀지 않은 요가원 안은 수업 시작 10분이면 금방 후끈하니 달아오른다. 열심히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땀이 툭툭 떨어지는 것도 금방. 하타요가 세션이라도 들은 날이면 요가복이며 요가매트까지도 축축해지기 일쑤다.


그날도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렸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충 옷을 갈아입고 평소처럼 요가매트를 꽂아두고 나오려는데, 탈의실 문 앞에 붙은 문구 하나가 나를 잡아챘다.



 '요가매트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햇빛에 말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냄새가 날 수도 있습니다.'



뜨끔한 마음에 그 길로 다시 요가매트를 집어 들고 집에 왔다. 주말 낮에 베란다에 볕이 쨍쨍하게 들면 거기에 펼쳐둘 생각으로. 집에 와서도 어쩐지 그 문장이 찝찝하게 남아 요가매트를 집어 들고 코를 킁킁댔다. 그런데 웬걸, 매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아니라 아주 익숙한 향기가 났다. 요가를 할 때 늘 피우는, 이제는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 향내가.


어딘가 위안이 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참 그 향을 맡았다. 내가 요가를 가면 몇 번이나 갔다고,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세 번 가서 딱 한 시간을 하고 오는데. 그새 요가매트에 진득하니 그 향내가 배어있었다. 내가 요가를 하며 보낸 시간이 어딘가에 이렇게 켜켜이 쌓이고 있었구나 싶어 우습게도 순간 뭉클하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원래 향에 민감하지 않다. 비염 때문인가도 싶었으나 그러기엔 또 냄새-특히 악취-에는 엄청 민감하고. 이유야 모르겠지만 하여간 향을 잘 분별하지도 못하고 딱히 호불호도 없다. 엄청 독한 향이 아니면 웬만한 향수는 다 '좋은데?' 정도의 평가가 끝이고, 그러다 보니 향수는 보통 요즘 인기 있다는 걸 한두 개 맡아보고 금방 고른다. 뭐 여러 개를 맡아봐도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질뿐더러 딱히 그렇게 공을 들일만큼 향수에 큰 애정도 없으니. 그렇게 사놓고도 결국 외출할 때 향수는 빼먹고 나가기 일쑤다. 내가 향에 딱히 예민하지 않으니 뿌린 것과 뿌리지 않은 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매번 까먹게 된달까. 뿌릴 때는 너무 짙어서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향이 막상 대문 밖을 나서면 그새 사라져 있는 느낌이라 영 매번 뿌릴 이유를 잘 못 찾겠기도 하고.




어쩌면 그냥 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향에 둔감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민감해서 피곤해진 것일지도 모르고. 특히 화장품에서 나는 인공적인 '분내'에는 항상 숨을 참게 되고, 그나마 선택지가 있는 바디워시나 바디로션은 무조건 무향인 것을 고른다. 향수를 사더라도 오렌지나 무화과처럼 과일향이 진한 것, 혹은 정말 나무나 숲처럼 자연의 냄새에 가까운 것을 고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킁킁대고 맡는 향이 있다면 단연 요가원의 향이고, 유일하게 직접 뿌리는 향은 그 비슷한 향을 찾아 골라산 룸 스프레이다. 그렇게 강하지 않으면서도 어쩐지 묵직하게 내려앉아 깊숙이 스며드는 향. 산뜻하고 기분 좋은 향이라기보다는, 비가 잔뜩 내린 날 숲 속 깊은 곳에서 맡을 수 있을 만한 진득한 흙내음 같은 향. 엄마는 여자애 방에 왜 절간 같은 향이 나느냐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미 이 향과 요가 사이에 조건 형성이 일어난 걸지도 모른다. 이 향에 늘 뒤따라오는 요가라는 운동과 그 운동이 내게 주는 이완감이 이미 강력하게 조건화되어, 비슷한 향만 맡으면 조건반사처럼 마음 한 구석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도 아예 스틱을 꽂아 피우고 싶다. 초를 피우는 게 강아지한테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길 들어 못 하고 있을 뿐.




요가매트에 배어있는 향을 맡고 나서 내가 풍기는 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그럴진대, 뭐가 좋은 향인 지도 잘 모르겠고 향수를 뿌리는 것도 영 습관이 안 붙어 그간 반쯤은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더욱 향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그것이 칙칙 뿌려 내 위에 금방 덧씌운 향이 아닌 내 안에서 스며 나오는 향이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각자의 향이 배어있는 법, 꾸준히 내 것으로 만들다 보면 조금씩 그 향이 내게도 배지 않을까. 멀리서까지 맡을 수 있는 강한 향은 아니더라도 가까이 가 듬뿍 들이마시면 어쩐지 계속해서 코를 가까이하고 싶은 살내음. 책의 향이 되었든 요가의 향이 되었든- 느리더라도 꾸준히 좋은 향이 나는 곳에 나 스스로를 노출시켜야겠다.


언제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이, 여러 겹 켜켜이 쌓인 나 자신의 향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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