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한 글자 주제, 밥
“아침밥 안 먹을 거면 학교도 가지 마!”
어릴 적 나는,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학교를 못 가게 하는 집에서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다.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학교를 안 가는 게 훨씬 큰 일인데도 밥이 더 중요한 것처럼. 밥을 빌미로 학교를 못 가게 한다며 협박을 했다. 나는 그럼 학교 안 가겠다고 뻗대면 될 걸, 또 꾸역꾸역 밥을 먹었더랬다. 가끔은 늦잠을 자 짜증이 가득한 상태로, 밥을 먹으라는 엄마랑 소리 높여 싸우고는 싸운 게 서러워서인지, 늦을게 걱정되서인지, 눈물을 질질 흘리며 밥을 욱여넣는 적도 있었다.
메뉴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간혹 시리얼을 먹기도, 빵을 구워 잼을 발라 먹기도, 과일로 대체하기도, 인스턴트 부리또가 되기도 했다. 먹는 사람 때문에, 혹은 하는 사람에 맞춰서 바뀌었다. 하지만 대부분 밥이었다. 전날 엄마가 새벽까지 하신 각종 나물과 볶음과 조림과 찌개 등을 데워먹고 덜어먹었다.
이런 아침식사는 내가 고등학교를 기숙사 학교로 가게 되면서 주말에만 먹는 특별식으로 바뀌었다. 네 가족이 다 모인 주말이면 아침이어도 소고기를 구웠다. 관자 버터구이를 했다. 갈치 조림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항상 궁금했나보다. 거나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자주 물었다. 밥은 잘 먹냐며.
고등학생의 먹성답게 사랑니 빼던 날도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닭강정을 시켜먹은 나를 안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매번 물어봤다.
대학교에 들어가 자취를 시작할 때도, 시드니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때도 엄마는 내가 밥을 잘 챙겨 먹는지 궁금해했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자취방 냉장고에 뭘 챙겨놓지를 않을 때도, 페타 치즈와 올리브, 바질 페스토 맛에 빠져 한참 콜드 파스타를 해먹을 때도 엄마는 물어봤다. 밥은 잘 먹느냐고.
엄마가 말하는 밥은 가끔은 끼니이기도, 가끔은 쌀밥이기도, 가끔은 일상이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내가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암만 그래도 쌀밥이 든든한데 밀가루로 때우지는 않는지 궁금하면서도 일상에 힘든 일은 없는지를 매번 같은 질문으로 물어봤다.
그에 대한 내 답은 대부분 한결같았다.
“응, 잘 먹지.”
대부분의 대답은 끼니에 대한 답이었다. 때로는 걱정시키는 게 싫어서, 때로는 자세히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때로는 실제로 잘 먹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밥은 실제로 내게 끼니이기도, 쌀밥이기도, 일상이기도 했다. 매일 배고프지 않기 위해 밥을 먹었고, 대충 때워 금세 지치는 일이 없도록 든든한 쌀밥을 찾았다. 그리고 대충 먹는 밥에 조금은 불행해지는 일상, 잘 챙겨 먹은 밥에 행복함이 가득 차는 일상이기도 했다. 이래서일까, 밥심.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내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나도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밥은 잘 챙겨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