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한 글자 주제, 복
복 받은 줄 알아야지
설사 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기분 나쁜 말은 또 없을 것이다.
대체 복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복이라는 말은 항상 “받으라는 말” 이 따라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누구는 참 복 받았네 등등.
과연 이 "복"이란 게 뭘지 고민하다 얼마 전 친구에게 물었다.
복이랑 운은 뭐가 달라?
복은 Blessing이고 운은 Luck 이야. You are blessed to have something 이런 말 있잖아.
근데 그건 Luck으로 얘기하면 안 돼? I’m so lucky to have you 이런 말 말이야.
음, 근데 그건 좀 일시적인 것 같아. Blessing 은 좀 더 장기적인 느낌이랄까.
뚜렷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정리되고 말았지만, 복이 Blessing으로 번역된다면 이 또한 누군가에게 받는 개념일 테다. 누군가에게서 내려진 축복이라는 말이니, 한글로 생각하든 영어로 생각하든 이 복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것, 혹은 성취해낸 것이라기보다는 좀 더 은혜로운 누군가의 덕분에 내게 생긴 좋은 일을 말하는 것만 같다. 정말 그게 복인 걸까.
복 받은 줄 알아야지
최근 [82년생 김지영] 영화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다.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는 “누구도 페미 코인에 탑승한다” 는 비난 일지 모르겠는 비난이 떠도는가 하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별점 테러가 시작되었고,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는 이 영화를 매개로 헤어지는 연인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이 영화를, 혹은 이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맥락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복 받은 줄 알아야지.”
그래, 엄마 세대에는 남녀차별이 심했지. 그래서 이런 고생도 저런 고생도 했지. 근데 그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뭐가 있어? 다들 대학도 가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일도 나눠하는데. 복 받은 줄 알아야지. 지금 너는 복 받은 줄 알고 현실에 만족해야 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냐.
이 세대 여자들이 그렇게 복을 받았다면, 정말 과연 그렇다면 이 복은 대체 누가 준 것일까.
갑자기 전 세대보다 “갑자기 덜 가부장적이게 된” 지금 세대의 남자들이 이런 기회를 준 것일까? 갑자기, 그리고 어쩌다 좋아진 세상이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과 취업률을 올려준 것일까? 이것들이 정녕 누군가가 만들어내거나 성취해내거나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좀 더 은혜로운 누군가가 베풀어 준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은혜로운 누군가는 대체 누구길래 누군가의 심기는 불편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설움은 충분히 풀어지지 않는 수준으로 교묘히 준 것일까? 대체 누가 준 복이길래. 대체 이게 무슨 복이길래.
이전 세대의 여자들보다 지금 세대의 여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는, 좀 더 나아진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특정 성별 혹은 나이 때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 보편적인 개선이다. 저 문장에서 여자라는 말을 사람으로 바꿔도 명제는 성립한다. 이전 세대보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 스펙트럼이 넓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고 그런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으니까. 굳이 누군가가 특정 성별에게 내려준 복 같은 게 아니다.
복 받은 줄 알아야지
만약 누군가가 내게 주어진 기회, 혹은 상황이 “복 받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누구 말마따나 다행히도 이 나라에, 이 시기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될까? 감사하며 현실에 안주해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복 받은 걸 알라는 건, 기대치를 낮추라는 얘기다. 기대치를 낮추면 불행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게 만족감이나 행복감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불안감을 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줄어든 불안감은 일시적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나쁜 것이 덜 하다고 해서 만족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결국엔 지금보다 더 나은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내게 그 복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내게 준 복이 여기까지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리는 없다.
결국 세상은 더 바뀔 거다. 만약 세상이 바뀌는 방향이 여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소수자들에게 "복"이 되는 방향이라면, 그 복을 주는 주체는 변화를 만들어낸 스스로다. 결국 복이란 건 원하는 상태로의 변화다. 스스로 복을 내린 사람들은 더 많은 복을 불러오기 위해 끊임없이 바뀔 거다. 이제 본인이 복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복 받은 줄 알라며 안주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에게 묻고 싶다.
복, 받을 줄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