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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Dec 29. 2019

올해의 썸띵

열일곱 번째 한 글자 주제, 해

어느새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이제 2019년의 마지막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내고 나면, 2020년이 되는 것이죠.

매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해를 돌아봅니다. 그 형태는 때로는 업무 실적이기도, 때로는 연말 정산이기도, 때로는 고치고 싶었던 습관에 대한 회상이기도 해요.


작년 말의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부끄럽게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이런 걸 해볼까, 저런 걸 해볼까 구상만 하다가 새해가 시작되어 버렸죠. 물론 새해가 되고 나서 새해 다짐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디어 리스트업-이라고 하기엔 기록도 하지 않았으니 의식의 흐름대로 상상하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만 하다가 어느새 4월이 되고 말았지 뭐예요. 그나마 아이디어 중 뱉어놓은, ‘좋아하는 이와 글쓰기’를 봄부터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은 위안이 됩니다.


저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에요. 미루기도 잘하지요. 그런 저는, 친구와 함께 글을 쓰면서 저를 제 때 움직이게 하는 건 마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연말이 다가오니 다른 고마운 이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었지요. 직접 일을 만들지는 않아도, 깔아준 판에 끼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마감시간 전에 이야기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밤, 알딸딸한 와인의 기운을 빌려 늦은 시간까지 한 해의 추억과 고민을 한껏 떠올리고, 정리해보았습니다.



한 해에 대한 회고라면, 올 한 해를 잘 보냈나, 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겠지요.

올해, 이 고민에 대해서는 세 꼭지로 나누어 정리해보려고 해요.


올해의 질문, 올해의 깨달음, 올해의 감정.




올해의 질문: 잘하고 있나?


올해는 여러모로 작년이나 예년에 비해 안정적인 한 해였어요. 작년 초, 마음에 잔뜩 생채기가 난 채로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한 저는 한껏 불안한 상태였어요. 좋은 선택을 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불안함이 가득했죠. 새로 시작하는 곳에서는 누구에게도 밉보이기도, 그 누구를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저 안전하고 안정적인 상태로의 진입이 절실했고, 불안할 때는 자신감에 가득 찬 연기를 해댔죠. 일종의 자기 세뇌이기도 했을 거예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자기 세뇌.


아주 다행히도, 올해가 되니 그 조급했던 마음이 꽤 차분해지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태해진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어요. 나 잘하고 있나, 의심을 하기 시작했죠. 나 주변 이런 사람들은 너무 멋진 것 같은데, 나도 멋져지지 않으면 못 어울리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감정이 저를 덮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덕분에 어떤 결정을 할 때, 그리고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이거 하면 멋있나? 이거면 잘하는 건가? 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죠. 물론 아직 멋있는 사람이 되려면 멀었고, 이불 뻥뻥 찰만한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발전했다는 느낌에, 기쁘다고 말할 수 있어 더더욱 기쁩니다.

 



올해의 깨달음: 사랑이 필요해!


올해 제가 손에 꼽는, 스스로 잘한 일 중 하나는 상담을 받았다는 거예요. 자주, 그리고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첫 상담 시간에 받았던 성격 기질 테스트를 기반으로 스스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된 것이 올해의 가장 큰 배움입니다.


저는 사실 제가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굳세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만, 사실은 이기적이라 다른 사람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상담 중에 했던 성격 기질 테스트의 결과로 미루어 보니 저는 아주 의존적이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더라고요. 생각해보니, 회사 들어간 지 몇 달이 되어서도 딱히 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한 사람을 만들지 못해 나만 친구가 없다며 엉엉 운 적도 있고, 계속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도 바쁜 일 때문에 약간이라도 소원해지는 것 같으면 혹시 제가 뭘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보기도 했지 뭐예요.


저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나도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던히 노력을 해왔어요. 뭘 하나 하더라도 평타는 쳐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는데, 그것 또한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사랑의 가장 큰 조건은 "no matter what"이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행동을 하든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나를 믿음직스럽다고 여겨주는 사람이 제게는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 사실을 알게 된 상담 이후 숙제를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어리숙하게 굴어도, 노력하지 않아도 부둥부둥을 받을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보라는 숙제요. 각개전투로 누군가와 친해지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는 만들고 있는 것 같으니, 그게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아직 그건 바로 이 그룹이야! 수준의 확신은 가지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그런 그룹을 몇 개 구한 것 같아요. 조바심이 덜한 걸로 봐서는요. 스스로를 깨달아서 참 다행인 한 해입니다.

 
 



올해의 감정: 홀가분


올해 처음으로 느껴본 기분이 있는데요, 바로 홀가분함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저는 대답했죠. 글로벌한 일, 해외 출장을 많이 갈 수 있는 일, 비행기를 많이 탈 수 있는 일.
저는 공항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곳의 설렘, 모르는 어딘가에서 날아오고 날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제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로 도착했을 때 그 낯섦이 주는 설렘. 그래서 마냥 그런 요소가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이어졌어요.
"그게 왜 중요해? 여행으로 가면 안 돼?"
머뭇거렸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다가 저의 근거의 전부였거든요. 물론 일로 해보면 다를 거라는 의견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건 제가 판단하는 영역이고, 그건 경험한 이후에 마음을 바꿔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단의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여행으로 가려면 휴가도 내고 돈도 써야 하는데, 일도 하면서 외국도 나가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럼 몇 번이나 나가야 해? 그래야 기분이 충족돼?"
말문이 턱 막혔어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냥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당시에는 말문이 막혀 약간은 뿌루퉁해지고 말았지만, 이 질문은 여태까지도 자주 저를 쫓아다닙니다.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뭔가 약간은 홀가분한 감정이 듭니다.


세어보니 2019년 동안 총 세 번의 해외여행과 여섯 번의 국내여행을 다녀왔더라고요. 주말만 써서 혹은 평일에 휴일 하루만 써서 짧게 다녀온 경우도 많았지만 참 바지런히 다녔어요. 이 정도 다니니 아쉬운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매년 너무 못 놀았다, 더 알차게 놀았어야 했는데, 에 대한 후회가 사실 있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한 해를 쏘다녀보고 나니, 세 가지 포인트에서 참 홀가분했습니다.

1. 이 정도 다녀보니 당분간은 그 결핍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점,

2. 나에게도 사실 기준이 있긴 했다는 점, (1년에 몇 번이나 여행을 가야 하냐는 질문이 노답이 아니었다는 점!)

3. 그리고 여전히 일로도 가보고 싶은 걸 보니, 언젠간 꼭 경험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좀 더 생겼다는 점.


쏘다니기 참 잘한 2019년이었네요.


매년,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사실 못 지킨 다짐들에 대한 후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년 목표를 세우기가 더 무서워지더라고요. 내년에도 못 지킬 텐데, 이게 의미가 있니 싶을 정도로 다운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는, 스스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봤어요. 물론 중간에 고민이 되는 일들도, 실패한 일들도, 시도조차 못한 일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 해를 잘 살아낸 것 같으니까요.


아직 내년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가장 큰 목표는 좀 더 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 멋있나? 잘하고 있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게 토닥여주는 한 해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게 제게 또 더 많은 에너지를 줄 거라고 믿습니다. 내년 한 해의 마무리도, 꼭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도 행복한 새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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