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Jan 13. 2020

마음맞는 벗들에게 감사하며

열여덟 번째 한 글자 주제, 벗

어렸을 땐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겼다. 아파트 같은 건물에 사는, 엄마와 친한 아주머니의 아이가 나와 동갑이라 친구가 됐다. 같은 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와 같이 집에 가다 친구가 됐다. 조 활동을 하면 친구가 됐다. 학교에서 서먹하던 학우를 학원에서 만나면 친구가 됐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친구가 되니,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때가 많았다. 어느 무리에서나 중심에 있진 못하더라도, 도태되거나 배제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때로는 그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이 되기도, 감추는 일이 되기도 했다.

어렸을 땐 그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떠들면 되었다. 잘 듣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때로는 내 마음을 오해한 이가 나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지나갔다. 그렇게, 어찌어찌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하지는 않은 채로 학창 시절은 보냈다.



하지만 친구를 만든다는 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려운 일이 됐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사는 더욱더 다양해지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다는 것 만으로는 관심받을 수 없었다. 소리 내지 않으면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억받기 위해 조금씩 목청을 틔워갔다. 우연히 같은 노선을 밟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다가도 조금만 노력을 게을리하면 멀어지는 건 금방이었다. 같은 교집합을 가진 모든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보니 어느 무리에서도 집중을 받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외로워졌다.

외롭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갑자기 준거집단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내 기준을 어디에 맞추어 나를 만들어야 할지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보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를 늘렸다. 조금은 나만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조금은 여전히 내가 나를 모르겠어 불안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내 곁을 지켜준 벗들이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선뜻 내보이지 못한 내 모습들을 시시콜콜 털어놓아도 불안하지 않을 이들과 언제고 등을 내어주고 귀를 열어준 이들이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말해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라는 사람의 모양새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날 좋아해 줄 것 같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 ‘벗’이었다. 내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만드는 이들이었다. 나도 그들에게 언제고 좋은 벗으로 생각나길 소망하게 만드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주는 안정적인 믿음은 때로는 지금 가장 가까운 벗과 멀어지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도와줬다.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쉬운 일이지만, 속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벗의 앞 길을 축복해주면 그만일 뿐이니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우정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내게 찾아온 마음 맞는 벗이 소중하면서도 감사하다. 이 든든함과 편안함이 영원하길 바란다. 각자의 지평을 넓혀주는 서로가 되기도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운명의 흐름이, 우리를 같은 길로 인도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넷플릭스 시리즈, 빨간머리 앤_시즌3, 에피소드5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