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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Jan 12. 2020

장미꽃 앞에서, 벗

열여덟 번째 한 글자 주제, 벗


2019년의 마지막 두 달간 아빠의 연애편지를 타이핑하고 책으로 엮는 작업을 했다. 약 1984년부터 1988년 사이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편지의 묶음. 엄마가 고이 파일첩에 하나씩 펴 넣어 30년 넘게 보관해 온 편지는 그 양이 많기도 많았다.


스물둘셋, 지금의 나보다도 한참 어린 아빠가 엄마를 생각하며 썼던 글. 처음 편지글을 읽어 내려갈 때는 도둑고양이처럼 훔쳐 읽는 느낌이 들어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며 의도하고 염원하여 남겨둔 글이거나 다듬고 다듬어 생각을 정리해둔 글도 아니고, 그저 스무 살 언저리에 연인에게 보냈던 편지들. 서른 해가 훌쩍 지나 그때의 당신보다 커버린 딸이 그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알면 아빠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하여.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치기일지라도 아빠의 영혼이 담긴 글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영혼의 조각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쉬웠다.


낮이며 밤이며 틈틈이, 필사하듯 꾹꾹 눌러 편지글을 옮겼다. 글을 옮기면 옮길수록 여기 아빠의 영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점차 실체화되었다. 아빠의 연애편지에는 꼭 독백과도 같은 글이 가득 담겨 그 사이사이로 내내 아빠를 엿볼 수 있었다. 몇 시간씩 타이핑을 하다 보면 손목이 저려왔지만, 그 시간이 나의 내면에서 어떤 밀도 있는 대화로 채워진다면야 그쯤이야 견딜 만했다. 사랑에 대해, 우정에 대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우울감에 대해, 그것을 이기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 그리움에 대해, 외로움에 대해... 나는 스무 살 적 아빠의 기록을 엿보며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마흔 살이나 쉰 살의 아빠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테다. 그때는 아쉽게도 내가 너무 어렸다. (그러나 아빠가 계속 곁에 있었다면 나는 계속 어렸을 것이므로, 아빠가 예순이 되어도 그런 순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가버린 것을 후회하기보다 가진 것에 족해야 하는 법. 나는 지금에 이르러 이 글과 '대화’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편지글을 타이핑한 것은 예쁘게 갈무리하여 다섯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독립출판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덕에 편집기술을 배우는 것도, 겨우 다섯 권 인쇄를 맡기는 것도 크게 비싸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중 한 권을 12월 24일, 엄마의 생일에 엄마에게 선물했다. 그것으로 일단 목표는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결코 예쁘게 갈무리되진 못할 생각들. 의문이 들어도 물을  없고 반박하고 싶어도 싸울  없고, 무엇보다도 동의하더라도 전할  없는 생각의 꼬리들이 길게 길게  안에 남았다.



완성된 책. 원래 좀 더 인쇄하여 아예 독립출판물로 유통할 생각도 했으나 소기의 목적을 너무 많이(?) 달성해버려 일단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중 하나,


편지글에는 유난히 '벗'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보내는 이를 '당신을 사랑하는 벗'이라고 쓴 글도 있고, 제목을 '나의 벗에게'로 두어 쓴 글도 있고, 아래처럼 '벗'이라는 단어를 두고 중얼중얼 풀어내려 간 글도 있다. (언젠가 엄마가 지나가듯 '아빠가 벗이라는 글자를 참 좋아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 이 글이 더욱이 반가웠다. 엄마에게 전해 들었던 아빠의 일면을 아빠에게 다시금 직접 듣는 기분이 들어서.)




 단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지 
벗에게는 사랑도 우정도 배반도 헐뜯음도 믿음도 욕설도 
 아무것도 필요 없이 벗은 언제까지나 그냥 벗이면 되는 거야 
사랑하면 실망하기 쉽지 믿음을 가지면 배반당하기 쉽고...
우리 같은 시간대를 살기 때문에  이상 바랄 필요가 없는 거야 
 생각하며 내가 가끔씩 슬퍼지는 이유에는 
장미를 보고 슬퍼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도 들어있을 거야 
그리고 그보다   이유는 바로 내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이지.



편지글을 통틀어 아빠는 엄마를 여자 친구라고도, 애인이라고도, 연인이라고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내가 좋아하는 이라고도 했지만-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벗이라고 명명하기를 즐겼던 것 같다. '벗'이라는 단어에 대해 스스로 내린 정의가 있었던 모양. 편지에서는 위의 단락에 앞서 엄마가 선물한 장미꽃을 앞에 두고 며칠째 편지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이틀째, 삼일째, 시간이 갈수록 이 소중한 장미가 점점 시들고 있다고. 오늘 학교에 다녀오면 완전히 시들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글이다. 너를 생각하면 꼭 장미를 생각할 때처럼 슬퍼지노라고.


사랑, 믿음, 우정 같은 거창한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관계, 혹은 그 작은 단어들로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포괄적인 관계. 배반이나 종말을 걱정할 것 없이 같은 시간대를 내내 함께 공유하는 사람.


처음 읽고서는 아빠, 애초에 너무 커다란 것을 바란 게 아닌가요-라고 생각했다. 정함도 끝도 없는 관계를 그렸다는 게 내가 아는 아빠답지 않아 더 그랬다. 물론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끝을 상상하고 두려워하는 어린 감정까지도 담겨있었지만, 그럼에도 여러 편지를 거듭하면서 아빠는 내내 엄마의 벗이 되기를 자처하고 엄마에게도 벗이 되어달라 노래하니까. 주는 것과 받는 것을 재지 않고 오늘과 내일의 다름을 걱정하지 않고 바라거나 실망하지 않고, 그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자고.






벗. 이 시대에는 입 안에서 굴리는 것도 생소한, 어딘가 빛이 바랜듯한 단어를 한동안 계속 곱씹었다. 단어가 익숙해질수록 처음의 아연하던 느낌이 사라지면서 어쩌면 이게 그렇게 이상주의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어떤 관계에서든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건 결국 그즈음 어딘가가 아닐까, 결국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단 하나뿐이라도 벗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도. 사랑과 우정의 정의에 갇히지 않고 그 무게를 따지지 않는 것이 쉽지는 않겠으나 사실 우리는 내내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같다. 다른 무엇이 아닌 서로의 벗이 되기 위해.


벗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 곁의 몇을 떠올려 본다. 아빠의 정의에 꼭 들어맞는 만점짜리 관계는 못 되더라도 그것은 내 마음이 여태 알량한 탓이고, 적어도 '친구'보다는 '벗'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내게는 있다.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만난 이들이 어느새 자연스레 스며들어 벗이 되었다. 서로에 대한 일말의 지나침 없이, 그리하여 서로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그저 이 시간대를 같이 걷고 있는 이들. 비록 멀리 있어도 같이 걷고 있는 이들. 나 혼자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 모두가 나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었음을 이제와 느낀다. 돌부리가 많은 길을 걸으며 내가 적잖이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언젠가부터 점점 그 치우침을 생각하지 않고 끝을 정하지 않게 되어 그저 깊어졌다 여겼었는데... 점점 서로에게 벗이 되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의미를 달리 두는 것이 삶에 대한 시선을 이렇게 또 바꾼다. 덕분에 앞으로의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하는지도 분명해졌다. 많고 많은 편지글 중 겨우 짤막한 한 단락에서, 아니 어쩌면 그저 아빠가 내심 좋아했을 뿐인 '벗'이라는 한 글자에서 이만큼을 배웠다. 이십 대의 아빠에게서 여전히 삶을 배운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이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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