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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Apr 08. 2020

본격 글쓰기 권장 영화, 작은아씨들

뒤늦은 작은 아씨들 후기

엠마왓슨을 좋아했다.

헤르미온느라는 캐릭터에 푹 빠 져지 냈기 때문이다. 항상 당차고 똑똑하고 용감한, 편견에 맞서 싸우면서 기죽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헤르미온느라는 캐릭터의 여파가 너무 커, 오히려 엠마 왓슨의 다른 작품은 거의 본 적 없지만 - 왠지 헤르미온느가 아닌 엠마왓슨을 봐도 헤르미온느를 떠올릴 것 같았다 - 이 영화는 아주 기다려졌다. 다름이 아닌 작은 아씨들이니까, 어렸을 적 달고 살던 소설 중 몇 안 되는, 여자 주인공이 잔뜩 나오는 작품이었으니까.

너무 닮고 싶었던 나의 어릴 적 롤모델


레이디버드라는 영화를 봤었다.

스크린이 내려간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서였다. 남들이 좋다고 칭찬할 땐 별 감흥이 없다가, 시간이 남은 김에 보게 된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만난 시얼샤는 아주 자기 세계가 확고한 십 대를 연기했다.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지 않아(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 감성 그대로를 맞아 맞아하고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가슴에 꽂히는 대사와 장면들이 있었다.


"I just, I wish that you liked me. " - "Of course I love you." - "But do you like me?"

 

“당연히 널 사랑하지”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그래서 날 좋아하냐고” 물은 것.

“옳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라고 믿은 때가 있던 것. 영화에서의 레이디버드는 너무 그때의 내가, 아니 사실은 지금의 나도 믿고 있는 것들을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 마음이 다 느껴져 마치 내가 말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그런 에피소드를 들었다.

시얼샤가 감독인 그레타 거윅을 찾아가 왜 자기가 조 여야만 하는지 설득했다고. 그리고 실제로 작은 아씨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시얼샤가 맞았어. 그는 조여야만 했어. 정말 그랬어.


그레타 거윅이 그려낸 작은아씨들은,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애정이 갔다. 맞아 맞아 나도 저래, 라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엠마 왓슨의 메그가 나 같았다.

때로는 남들 하는 대로 좋고 예쁜 게 다 하고 싶고 다 갖고 싶었다. 다들 하는 거라고 하면, 그게 비싼 드레스든 간지 나는 세계 여행이든 멋들어지게 사고, 하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고되고 지겨우면서도, 책임감 없이 방치할 수는 없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며 많은 것을 갖춰 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조건을 재지 않고 누군가를, 그리고 내 삶을 사랑하고 싶었다.

시얼샤의 조도 나 같았다.

다혈질에 해야 하는 말은 기필코 해야 하는 나. 가끔 무심코 말을 뱉어놓고 두고두고 후회하는 나.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너무 외로워요”라는 조의 말처럼, 누가 감히 여자를 한계 지으려고 하면 화가 나면서도 그 스테레오 타입에 일부는 해당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마는 나 같았다. 조처럼 열정 넘치게 푹 빠져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때로는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힘 내려 노력하는 나 같았다.

플로렌스 퓨의 에이미도, 엘리자 스켄런의 베스도 나와 닿아있었다. 다른 이를 챙기는 다정한 마음이 들다가도, 내가 당장 현실적으로 욕심내고 싶은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다. 너무나도 사랑받고 싶어서 때로는 떼를 쓰기도 하는 티모시 살라메의 로리도 나 같았다. 그 누구도, 나와 닿아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이 좋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더해갔다. 네 자매의 자매애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연대감도 좋았고, 내 히로인을 결혼시키려면 인세를 더 받아야겠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도 좋았고, 어찌 보면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메그지만 조에게 “네 꿈과 내 꿈이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도 좋았다. 그들의 용기있는, 따뜻한,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말을, 이런 행동을 내가 주변 사람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혹시 아직은 아니라면, 저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


작은아씨들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거대한 영웅도, 엄청난 부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누구나에게 그렇게 다가갈만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야말로 그냥 흘러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거꾸로 더 대단하다.


결국 에이미의 말이 맞다. 계속 쓰면, 중요해진다.

그리고 나도, 꾸준히 쓰고 싶어 졌다. 흘러가지 않고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나라도 꾸준히 변화시킬 수 있을 무언가를.


본격 글쓰기 권장 영화, 작은아씨들.

책도, 예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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