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뭘 했냐면요 1: 미드를 봤습니다
(일부 에피소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왓챠에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 있다. 이제 시즌 3을 보는 중.
이제야 그레이 아나토미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음의 이유에서였다. 킬링 이브를 보다 산드라 오의 연기에 반했기 때문이고, 그녀가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바라보며 깡총 뛰는 모습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녀와 샤론 최가 나눈 대화가 자꾸자꾸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 결국 산드라 오 때문이었다. 산드라 오의 연기를 더 보고 싶어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닥터 베일리였다. 챈드라 윌슨이 연기하는, 닥터 미란다 베일리.
단순히 연기를 잘하거나, 매력적인 캐릭터인 캐릭터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가 더 있었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면,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가 의사는 아니니, 그리고 이건 그냥 드라마이기도 하니, 그가 얼마나 훌륭한 손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내가 반한 닥터 베일리의 '일잘함'은 베일리가 가지고 있는 높은 잣대다.
한 번은 베일리가 그녀의 인턴인 오말리에게 거의 다 죽어가는, 사실은 곧 죽을 환자에 대한 조치를 지시한다. 오말리는 이미 다 죽어가는 환자인데 왜 굳이 처치를 해야 하는지, 그냥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지 계속 불평한다. 불평하는 오말리에게 베일리는 왜 이걸 내가 시킨 것 같냐고, 그걸 깨닫게 될 때까지 계속하라고 지시한다. 오말리는 불평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거의 시체가 되어가는 그 몸을 잘라도 보고, 압박도 해보고, 숨도 불어넣어본다.
결국 그 환자는 예상했던 대로 사망선고를 받지만, 오말리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바로, 가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라는 걸.
직업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 상황을 대입해볼 수 있는 일들은 수만 가지다. 특히 반복적이거나 단순 지시로 인해서 하게 되는 다양한 일들의 경우,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지, 필요 없는 일은 아닌지 먼저 불평하기 일쑤다. 그럴 때 나는 언제나 할 만큼 해보고 나서 불평을 했는지,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text book 같은 그 말 한마디에 다시금 반성하게 됐다.
실력이 밑바탕이 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신임받는 사람이다. 일적으로도 그렇지만, 감정적으로도 그러하다. 쉽사리 누군가의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입이 무겁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고민 상담을 해온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왠지 부러워졌다. 나도 저런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 못 된다. 그럴 일이 자주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과 일하다 갈등이 생긴다면, 그 이후로부터 그 사람이 친구로의 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오히려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곤 했었다. 그러다 최근 동료와 맥주를 먹는 자리가 있었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일만 하는 차가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어버렸다.
과연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좋은 동료로서의 적절한 거리감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 걸까?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떨 땐 사람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해줬으면 하다가도, 어떨 땐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될 정도로, 그러니까 내게 너무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나에게 기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오고 간다. 그렇게 거리 조절을 못하다가 결국은 혹시 모를 리스크를 질 바에 거리를 두게 되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외로워하거나 또는 내 존재감이 없을까 불안해하는 마음이 계속된다. 어떻게 하면 미란다 베일리처럼 스스로를 잘 유지하면서도 진심 어린 신뢰를 주고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녀는 한편으로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도 입체적이라고 느꼈다.
시즌2에선가, 닥터 베일리는 아기를 낳는다. 임신 중에 심한 입덧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해내고, 딸기 밀크셰이크로 입덧을 눌러낸다. 그러다 어느 날 사고가 터진다. 베일리가 만든 사고는 아니었다. 인턴들이 친 사고였다. 그 사건이 벌어지는 중 베일리는 다른 수술에 들어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내 인턴들이 다 어디가 있는지, 호출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왜 달려오지 않는 건지. 그리고 알게 된다. 무슨 일이 터졌는지.
이후에 그 해에 있었던 사고들을 회고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다른 한 의사가 해당 사고에 대한 책임을 베일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담당하던 인턴들이 벌인 사고 아니냐고. 당신이 호르몬적으로 불안정해져서, 혹은 나태해져서 인턴들을 책임지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질책한다. 베일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혼란스러워진다. 정말 자기 탓은 아닌지, 자기가 너무 물러진 건지 불안해진다. 안심할 수 있게 자기가 다독여주던 환자 가족에게도 선을 긋는다. 너무 물러지면 안 된다는 압박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극복해낸다. 부드럽다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걸 깨닫게 되면 서다. 베일리의 강점은 환자들에게 보여주는 공감 능력이다. 베일리는 손기술만 좋아서도 의료지식만 많아서도 좋은 의사가 되는게 아니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낸다.
성장은 고난에서 온다. 크기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결국엔 힘든 일이 사람을 바꾼다.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진단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평소와 다름없는 삶에서는 굳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난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성장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굳이 나를 바꾸고자 하지 않더라도 일이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을 때, 성장하지 못한 사람은 똑같은 고난을 되풀이해서 만난다. 나는 그럴 때 과연 어떤 사람일까, 베일리처럼 결국엔 나만의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일까, 혹은 아직까지도 같은 고민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중일까. 성장이라는 단어가 지겨운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성장해나가는, 그래서 이렇게 입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레이 아나토미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드는 미드는 아니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사랑에 죽고 못 사는' 타입이고, (말 그대로 다들 크레이지인 러브랄까) 그래서 때로는 공과 사를 적절히 구분하지 못한다. 의사들이 서로를 놀릴 때는 '간호사'냐며 놀린다. 예쁜 여자는 수술같이 '험한' 일을 하는 외과 의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거나, 연인 관계인 의사 둘의 남자 편 어머니는 상대방 연인에게 '결혼하면 더 여유시간 많은 곳으로 옮길 거냐'라고 묻는다.
아주 많은 차별적인 언행들이 오고 가는 드라마이고, 그래서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과 행동들 때문에 사건이 터지면, 닥터 베일리가 그들을 구해줬다. 그리고 사실은 베일리는 나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볼 수 있도록 구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땡큐 닥터 베일리, 다음 화에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