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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Sep 06. 2020

여행이 고픈 요즘,

어젠 뭘 했냐면요 8: 여행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여행과 나들이를 주제로 글을 쓰려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적습니다.


마지막 해외여행이 언제였더라,


작년 가을 끝무렵에 긴 짬을 내어 다녀온 포르투갈, 그 추억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지 싶은 그 여행 이후로, 3월에 예약해뒀던 방콕도 추석에 예약해뒀던 뉴욕도 모두 무너져버렸다. 외국에 나가기는 어려우니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야지, 조금 잠잠해지고 더위가 가시면 구월이나 시월쯤, 길게 제주도에 가야지 했던 계획도 이제는 말짱 황이다. 연달아 오는 태풍에, 아직 어떻게 튈지 모르는 코로나 확진자 급증세에 여행은커녕 집 앞 나들이 조차 조심스러울 판이다.


이번 주에는 에그타르트를 시켜봤다.

트위터의 누군가가 사진을 올렸는데 때깔이 너무 좋았다. 사진을 보자마자 포르투갈에서 며칠이고 먹었던 나타가 생각났다. 맛있다는 곳을 두루두루 먹어봤지만, 가장 맛있었던 건 만테가리아라는 브랜드의 나타였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스냅사진을 찍어준 현지 사진작가가 추천해준 브랜드였다. 곧 포르투로 가는 기차를 타기 불과 몇 시간 전이라, 리스본에서는 도무지 갈 시간이 없었다. 찾아보니 포르투에도 만테가리아가 있더랬다. 안에서 먹을 자리가 없어 사들고 나와 옆집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한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뭐람! 너무 맛있어서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여태 우리가 뭐하러 다른 브랜드의 에그타르트로 배를 채웠나. 마지막에 이 감동을 높이기 위해서였나. 그저 감격스러운 마음에 커피를 끝내자마자 만테가리아 가게로 돌아갔다. 바로 몇 갤 더 사서 가방에 넣었다. 훨씬 많이 사갈걸 그런가, 아니야 그래도 적당히 해야 이 감동이 오래가지, 하며 마음을 다스렸던 그때 그 기억. 이번에 시킨 이 에그타르트가 그 정도의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기는 충분했다.

만테가리아를 떠올리면서 시킨 에그타르트, 아주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었어!


온화한 가을 날씨를 기대하고 떠난 포르투갈은 우리에게 축축하고도 싸늘한 늦가을 날씨를 안겨줬지만 그래도 추억은 온통 즐거울 뿐이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신나서 야경을 찍어대던 우리들. 리스본 숙소에 도착한 첫날, 동네가 너무 힙하다며 신나서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갔던 기억. 포르투 숙소에서는 뷰가 좋다고 얼마나 방방 뛰었는지. 처음으로 우버잇츠를 시켜 팟타이를 먹었더랬지. 매일 마셨던 비뉴 베르드는 도수가 좀 낮은 것 같다며 꿀꺽꿀꺽 마셔대다 하루 종일 웃고 깔깔댔던 나날들이었고, 이런 기억들을 나의 포르투갈 동행과 두고두고 꺼내보며 다녀오길 잘했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 이후의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훌쩍 떠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단다.

비행기도 여태까지 처럼 맘먹으면 탈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설레던 공항 냄새도, 열심히 모아둔 호텔스닷컴 스티커(?)도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게 되는 거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내가 앞으로 몇 년간 세워둔 N일 여행 플랜들이 산산조각이 나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은 무엇으로 해야 하나, 몇 년간 나를 길들여 온 가장 효과적이고 마음에 드는 방법인데.


하지만 그게 결국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라면, 어찌 됐건 적응은 해야 하고 적응이 되기도 하지 않겠나.

앞으로의 대안을 미리 고민해놓을 겸, 곰곰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첫 번째, 루틴에서 벗어나,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주는 긴장감이 좋다. 두 번째, 그 긴장감 사이에서 나에게 베스트 옵션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 세 번째, 그 모든 걸 크게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알아가고 테스트해보는 내가 좋다. 순간 순간 무엇을 만나든,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여행지에서는 왠지 모르게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웃어넘길 수 있으니까.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의미 부여가 되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가 한층 성숙하고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런 느낌은 여행에 다녀온 뒤 그 여운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일상으로 돌아온 내게도 좋은 활력으로 이어지니까, 여행이 좋았다.


결국 내가 여행에서 좋아했던 건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모든 걸 흡수해버리겠다는 식으로 열려버리는 나의 모습이었을 것 같다. 모르거나 어설프게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이,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그 상태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여행이 고픈 요즘, 사실은 나는 여행이어야만 했다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생각에 다가오는 무료함, 그리고 그 무료함이 왠지 모르게 나를 잠식하거나 정체시킬 거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나 나들이는커녕 잠시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여행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여행 때의 마음을 되찾는 연습을 할 때겠지. 내일부터는 다시 찾아봐야겠다. 뭔가를 배울 거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고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일상 속에서도 다시 떠올리고, 두려운 마음을 줄여가며 살아봐야지.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일상의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꼭 여행 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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