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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Jul 15. 2022

홍상삼 선수를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카메라 연출.gif'이라는 제목으로 내내 회자되는 몇 개의 짤이 있다. 생생한 카메라 무빙과 센스 있는 연출 덕에 평범한 경기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 '짤'이라고 부르기에 굉장히 고퀄인 영상들.  그 여러 개의 레전드 짤 중에 하나가 바로 홍상삼 선수가 나온 '홍삼 짤'이다.   


[홍삼짤: https://youtu.be/tAYlkxhDrHk?t=81]


 당시 두산 베어스 팀 소속이었던 홍상삼 선수가 전력으로 공을 던지고 난 뒤 카메라의 렌즈는 경기장의 한 편에 걸린 '천지양 홍삼' 광고판에 두둥! 초점을 강렬하게 맞춘다. '홍삼'과 '홍상삼' 선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만들어진 재치 있는 연출이었다. 당시 이 선수가 성적이 좋아서 팀에 힘을 주는 든든한 홍삼 같은 존재라는 이중적인 의미도 있었다. 이 짤은 선수를 잘 아는 감독님의 재치로 만들어졌지만 이후에도 홍상삼 선수는 종종 재미있는 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1루수에게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른 후 본인도 어이가 없었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거나 포수가 전달하는 사인을 이해하지 못해 '뭐야'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입모양이 그대로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그는 보통프로야구 선수답지 않는 엉뚱함이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야구 세계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화를 내거나 좌절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응원 받기보다는 멘탈이 약한 선수로 낙인이 찍힌다. 긍정적인 감정도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설레발을 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고, 나중에 그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언론과 팬들은 좋아했던 순간의 영상을 끌어올리며 비난하는 땔감으로 사용한다. (잔인하지만 대중에게 드러나는 프로 경기 특성상 이런 일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홍 선수는 미디어에서 허술(?)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특히 2019년 11월이 그랬다.


https://youtu.be/0a16spcGYGA 


 당시 선수는 인터뷰가 마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본인에게 공황장애가 있다고 고백했다. 프로야구의 생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기 어려운 너무 솔직한 발언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야구 선수의 몸, 아니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결함이 있는 상품이라며 업계 관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홍 선수는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전까지 팬들은 종종 홍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한숨을 쉬거나 욕을 하기도 했었다. 공을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정확히 던지지 못하고 땅에 꽂는 폭투를 던졌고, 공을 던지면서 정면이 아닌 시선이 하늘을 보곤 했었다. 프로에 있는 선수 답지 않은 이상한 플레이 었다. 이 단출한 고백을 듣고 이제야 팬들은 과거의 그 기이한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힘내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산 베어스 팀에서 방출이 되었지만 이후 기아 타이거즈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이 모든 히스토리는 홍상삼 선수가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 후 찾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수의 인터뷰까지 보고 난 후 팬이 되어버렸다. 나는 몇 년 전 회사에서의 일을 계기로 '범불안장애'를 얻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책임져야 했고,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외로움에 고립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회사 일부터 설거지나 밥 먹기 사소한 일에도 집중을 못했다. 내 마음은 마치 당장 몇 초 후 세상의 멸망을 앞둔 사람처럼 불안정했다. 이런 아픔을 가지고 다시 일을 하기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여전히 회사에서 누가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일이 주어질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야구 선수를 보면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이겨내는 모습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그 세계 속에서 살아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홍 선수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나의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딱 일주일 전, 홍상삼 선수가 웨이버 공시에 올라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웨이버 공시에 올라오면 선수와 단체 간의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의미로 더 이상 홍상삼 선수가 기아 타이거즈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선수가 자발적으로 팀을 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 팀에서 선수를 방출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경기에서 이 선수가 마운드에 등판했었는데 갑자기 왜? 무슨 사고라도 쳤던 걸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안 좋은 사건사고는 아니었다. 선수 본인의 요청으로 팀을 나가려고 하고 다른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뉴스 기사의 한 줄 설명이 내 마음을 잠시 가라앉혔다.


 누구보다 그의 성장을 응원하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 아쉬움이 남는다. 일개 팬으로 그의 속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상황이라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운드 위 그의 경기를 더 보고 싶었다.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낙차 큰 변화구, 때때로 엉뚱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던 그의 행동들. 그리고 공황장애를 겪고 있지만 계속 야구를 하며 극복하는 여정에서 진실함이 묻어났다. 그 선수가 잘 되면 나도 회사에서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거란 희망이 있었다.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 정말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삶을 응원한다. 어쩌면 그의 선택은 인생의 또다른 힌트일지도 모른다. 야구선수에만 꼭 매달릴 필요가 없다. 조금은 마음을 비우고 잠시 쉬고 일상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다른 길을 선택해도 된다고 말이다. 


홍상삼 선수, 어떤 선택을 할 지 모르겠지만 제2의 삶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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