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녕 Jul 21. 2022

먹는 타율은 3할이구요

돼지력 뿜뿜 먹잘알 야구팬


 지난달 올해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다. 야구 시즌은 4월에 시작했는데 두 달이 지나고 오다니, 하필이면 장마철이라 우취(우천 취소)로 경기를 못 보게 될까 봐 당일 오전까지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날이 기적적으로 개면서 한 손에는 굽네치킨, 반대쪽 손에는 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을 들고 종합운동장역 앞 잠실 야구장을 향했다.


 보통 야구장을 가면 치맥을 많이 먹는데 나는 야구장에서는 잘 먹지는 않는 편이다. 먹는 시간은 마음 편하고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데 야구장의 테이블이 없는 일반 좌석은 두 다리를 오므려야 할 만큼 비좁다. 자리 운이 좋지 않으면 지하철 양옆에 덩치 큰 분들 사이 앉은 것처럼 세 시간 동안 껴 있게 된다. 그 자세로 뜨거운 치킨 박스를 무릎 위에 올리면 체온이 점점 높아지고 사이드 디쉬로 더위를 먹는 셈. 하지만 이날은 야구에 관심 없는 친구를 꼬드겨서 같이 가는 터라 그 친구가 좋아하는 굽네치킨을 미리 준비했다.


 티켓팅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탁 트인 맑은 하늘과 그 공간을 꽉 채우는 관중석, 그리고 초록 잔디가 보였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잔디에 누워 몸을 풀고 있었고, 관중석에 앉은 팬들은 선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리액션에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반면 나는 ‘아 일단 선수분들 얼굴 실제로 한번 봤고요. 네네 이따 경기 때 뵙시다~’ 살짝 눈인사를 건넨 뒤 허겁지겁 치킨을 먹어 치웠다. 구구절절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야구장에서 먹는 치킨은 막상 맛있었다.


 내 옆자리도 옆 옆자리도 앞줄도 뒷줄도 모두 치킨이나 다른 메뉴를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야구팬들의 대단한 먹성이 실감이 난다. 지난달 어느 주말 인천 문학 경기장에 있는 스타벅스는 얼음마저 다 떨어져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못 팔았다고 하니 그만큼 야구팬들은 ‘돼지력’에 상당히 자부하고 있다. 스마트폰 지도 앱을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야구장 주변 맛집들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모르는 지역의 맛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에 #잠실맛집 해시태그로 검색하기보다 #잠실직관 아니면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에 물어보면 빠른 정도.


 유달리 야구팬이 ‘먹잘알’인 이유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평일은 저녁 여섯 시 반, 주말은 다섯 시 딱 저녁 시간에 게임이 시작한다.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경기 시간의 끝이 정해지지 않아서 기본 세 시간, 가끔은 네 시간이 넘는다. 긴 경기 시간을 잘 버텨야 하니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경기 전과 중간에도 끊임없이 채워 넣고, 경기가 끝나면 또 나름대로 ‘뒤풀이’가 필요하다. 이렇게 먹는 일에 야구만큼 신경 쓰고 연구(?)하니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근처 식당과 술집이 모인 번화가로 향한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신나고, 지면 지는 대로 위로가 필요하다. 그날의 승패에 따라 음식과 술맛이 달라진다. 이기는 날은 무엇 마셔도 청량감이 가득한 시원한 맛, 지는 날은 고기를 먹어도 왠지 평소보다 쓴맛이 난다. 아무래도 야구팬이 맛잘알인 또 다른 이유는 게임이 질 경우를 대비하는 Plan B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그란 원판 위 잘 구워진 고기, 칠첩반상으로 차려진 밥상, 시원한 맥주와 치즈가 듬뿍 올려진 피자를 마주하는 순간 기분이 사르르 풀립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경기장에 가면 그 지역만의 맛집을 경험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인 2018년까지 잠실 야구장과 고척돔, 광주 챔피언스필드까지 경기를 보러 다녔다. 특히 기아 타이거즈의 홈구장이 있는 전라도 광주에 가는 날은 1박 2일 식도락 여행이었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면 한 시간 반이 걸려 광주 송정역에 도착한다. 숙소로 이동해 체크인을 마치고 미리 찜해 놓은 식당으로 향한다. 맛의 고장 전라남도 답게 오리탕, 양념갈비, 애호박 찌개 등 선택지가 많다. 


 어느 날은 돼지갈비를 먹으러 ‘쌍교숯불갈비’라는 식당을 방문했다. 광주광역시 바로 위 북쪽 방향에 ‘전라남도 담양군’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대나무숲만큼 예로부터 갈비가 유명한 고장이다.  담양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이 식당에 광주에도 분점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가보았다. 주문하기 얼마 되지 않아 푸짐한 열 가지의 밑반찬과 잘 익은 양념 갈비가 같이 나온다. ‘역시 전라도 음식 클래스’, 온몸 가득 자부심을 느끼며 젓가락을 든다. 입이 쉴 틈이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대로 식도락을 끝내기는 아쉬운 마음, 한 손에 양동시장의 명물 가마솥에서 튀긴 치킨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숙소로 향한다. 이쯤 되면 야구를 보러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쌍교숯불갈비의 밑반찬


 하나하나 나열하니 야구를 빌미로 참 많이도 먹었다. 이쯤 되면 야구가 먹부림에 이용당해서 억울해도 인정이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이 떠오른다.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그/그녀는 오늘도 1승을 추가했다. 야구 선수도 관중인 우리도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왕이면 잘 챙겨 먹어봅시다. 그래서 오늘 잠실에도 굽네치킨을 들고 먹으러 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상삼 선수를 생각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