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 크기만큼 좋아할 수 있다면
아마 책을 낸다면 첫 번째 순서일 것만 같은 야구와 나의 첫 이야기
열두 살 무렵 학교를 다녀오면 아주타운 102동 어느 구석에는 늘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렌지색 가죽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었고, 오른손은 머리를 괸 채 텔레비전 속 야구 중계를 보았다. 나는 ‘다녀왔습니다’란 말과 신발을 함께 벗어던지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다음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과자 봉지를 손에 쥐고 소파 앞에 앉았다. 야구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아버지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텔레비전 화면은 이 채널 저 채널로 뺑뺑이를 돌았다. 그래도 종점은 한결같이 기아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 당시의 나는 야구를 하나도 모르던 아이였고 아버지의 리액션으로 야구에 대한 밑그림을 어렴풋이 그렸다. 저녁 8시 뉴스의 정치 소식처럼 항상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닐까.
이 장면은 몇 조각되지 않는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그 후로는 아버지는 집에서 잘 보이지 않았고 당신이 보던 야구 경기처럼 나와 우리 가족을 한숨 쉬게 했다. 가까운 고등학교 친구의 보증을 서 줬다고 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엄마와 나, 동생을 마주하기 어려웠던 걸까. 아버지는 주로 취해 있거나 자고 있었다. 가끔 그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느 추운 겨울밤이 선명하다.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와 나는 서시장 뒷골목 골목 사이를 헤집으며 막걸릿집에서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비슷한 날들이 이어졌다. 때때로 9층에 살고 있었지만 창문 밖에 찰랑거리는 물이 비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침몰하고 있다. 그나마 아버지의 회사 팀장님이 배려해주신 덕에 이 배는 부서지지 않았지만, 한 배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우리 마음속에서 멀어졌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아버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엄마와 나, 동생 - 우리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아버지와 교류가 없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도 아버지의 자리는 주로 비어 있었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탁구 동호회나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기 때문이다. 가족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완성한다. 같은 반 친구들은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자랑도 하던데 우리 집은 주구 창창 텔레비전만 보았다. 엄마도 아버지도 하지 않으면, 내가 가족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야 했을까. 우리가 ‘가족’으로 끈끈하게 교류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그랬을까. 조금의 내 몫을 느끼며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굳이 안 들어도 되는.
아버지가 누웠던 그 자리에서 야구 경기를 보았다. 학교 체육 시간에 종종 하던 발야구와 규칙이 비슷하다 보니 어떤 상황이 좋고 나쁜지 대강 경기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야구의 세계에 깊이 다가갈수록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야구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때때로 예외적인 상황이 나와도 늘 해왔던 방식을 따랐다. 명시된 야구 룰을 어긋나는 일은 정말 많지 않았다.
가족들과 따스한 말을 주고받고 싶었다. 가까운 바다나 공원에 산책도 가고, 좋아하는 아귀찜도 먹으러 가끔은 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주 취해 있었고, 가족보단 남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이런 모습일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반대로 행동했다.
아버지는 야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거나 그의 이상한 행동은 야구를 아는 일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만년 하위권에 있는 팀을 지켜보고 있는 답답함이 이런 것이구나. 변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우리 자매는 집을 떠났다. 나는 고등학교, 동생은 중학교로 기숙사를 제공하는 타 지역을 선택했다. 동생은 소프트볼 선수를 꿈꾸며 야구에 뛰어들었고 나는 입시 공부만 집중적으로 시키는 어느 소도시의 학교를 향해 야구 밖으로 벗어났다. 어쨌든 야구와의 묘한 인연은 계속되었다.
일종의 고백을 하자면 야구공 크기 정도만큼만 야구를 좋아하고 싶다.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도 아닌 야구공이다. 둘레 234mm 무게 147g, ‘야구팬’이라고 내세우기엔 아주 작은 크기의 마음이다. 성인 기준 심장의 무게가 250g에서 300g 정도라는데 심장보다도 작다. 나의 야구엔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응원하는 야구팀도 감정 이입하며 가까이할수록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경기 결과에 속상할 때가 많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내가 행복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미운 정이 무섭다며 자꾸 눈에 밟힌다. 아픈 데는 없이 잘 지내는지, 오늘 경기는 어땠는지 슬금슬금 곁눈질한다.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는 이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 견뎌내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