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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Jul 28. 2022

유독 전라도 사람들은 타이거즈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내가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2022년 기준 한국 프로야구에는 총 열 개의 팀이 있다. 강원도를 제외하면 전국 각 ‘도’를 대표하는 지역을 연고로 야구팀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야구와의 첫 인연은 태어난 고향이나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응원팀을 정하며 시작되어 왔다. 야구팬끼리 우스갯소리로 응원 팀은 선택하기 보다는 태어나면서 ‘결정’된다고들 한다. 지금이 출생 신분에 따라 삶이 정해지던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 지역에 살면 자연스럽게 지역팀을 응원하게 된다. 나도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라며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의 팬으로 훌륭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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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프로야구가 경기가 열린 지 40주년을 맞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마흔 살의 중년이 되는 긴 세월이다. 야구는 중년이 갖는 인생의 깊이만큼 지역 사람들과 찐~한 관계의 층을 쌓아왔다. 평일 아침과 점심시간은 전날 열린 야구 경기로 식당이 들썩들썩하고, 퇴근길 대중교통에서는 당일 야구 중계가 흘러나오며 모두가 귀를 쫑긋하는 시간이다. 주말에는 가까운 사람과 야구장을 찾는 것만큼 좋은 여가 생활이 없다. 일주일의 6일은 야구 경기가 열리고 있으니 야구는 그 도시의 사람들과 아주 가까이 호흡하고 있다. 그래서 야구 경기에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잘 보인다.


상대 팀 투수가 1루에 진출한 우리 팀의 타자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외치는 응원 구호가 지역마다 있다. 팀의 연고 지역 사투리를 활용한 재미난 구호이다. 전라도 광주가 홈구장인 기아 타이거즈는 호남 사투리로 ‘아야 날새겄다’, 부산 연고인 롯데는 ‘마!’, 대구가 홈구장인 삼성 라이온즈는 ‘뭐꼬!’, 대전의 한화 이글스는 ‘뭐여 뭐하는겨!’등 이렇게 나열만 해도 특유의 사투리 톤과 표정까지 그려진다. 두산과 기아의 경기가 열리는 날, 잠실 야구장에서 ‘아야 날새겄다’를 외치면 우리 관중석 만큼은 챔피언스 필드가 된다. 


여러 팀 중에서도 내가 응원하는 기아 타이거즈는 유독 연고 지역(전라도) 사람들의 애착이 강하다. 참 이상하다. 기아 자동차라는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일개 야구팀일 뿐인데 다들 이 팀의 승리에 그날의 기분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고향 같은 애틋함을 갖는다. 대구에 기업의 뿌리를 두고 있는 삼성과 달리 기아는 전라도의 로컬 기업이 아닌데도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내 고향이 전라도라서 자연스럽게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고,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이 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진기한 흐름이다.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어릴 적 무등 야구 경기장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은 야구 선수 이름이나 해태 타이거즈팀을 외치기보단 전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응원 구호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억눌리고 소외되어 왔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의 영웅과 같았던 그 정치인을 이름을 외치며 분출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독재와 군사정권으로 엄하던 시절, 유일하게 지역민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야구장이었다. 야구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도 총과 곤봉으로부터 위협받지 않으며 크게 소리까지 칠 수 있었다. 한국에 야구가 시작된 역사를 시작하면 참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야구는 전두환 정권에서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곳이다. 가까이는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도시가 고립되며 많은 시민이 희생된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간 ‘지역감정’을 만들어 마땅한 이유도 없이 서로를 미워하게 했다. 1950년대 한국 전쟁의 시기에는 ‘빨치산’이라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되었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는 전라도의 풍부한 곡물 자원을 일제로부터 수탈당했다. ‘아픔’이라고 표현하기에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역사, 나는 학교 수업 시간이나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아도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시대의 목격자와 희생자들이 내 가족과 선생님, 주위 어른들이었으니까. 저마다 마음 한 켠에는 깊은 한을 쌓아 둔 채 살아가고 있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서사 덕분에 타이거즈란 팀이 단순한 스포츠 구단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타이거즈가 우승 트로피를 많이 들어 올린 레전드 팀이어서 만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총과 칼로 엄혹한 시절, 타이거즈는 전라도 사람들의 곁에 항상 있었다. 행복한 순간에 함께한 사람보다 슬플 때 옆에서 위로하고 다독이는 친구가 더 마음이 가는 것처럼 이 팀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마음이 찡하다. 요즘은 야구가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나에게 야구는 여수 바닷바람과 닮은 위로가 된다. 잠실 경기장, 고척돔 그 어디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활용한 응원 구호를 외치면 바로 이곳이 나의 고향이다. 타이거즈가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날은 고향 친구가 금의환향하는 것만 같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만큼 야구를 마음 깊이 사랑한다. 이것이 내가 기아 타이거즈라는 팀을 영원히 놓지 못하는 절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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