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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Aug 22. 2022

그깟 공놀이가 제 인생입니다

프롤로그

매일 야구하듯 살고 있다. 고양이 살구와 함께 사는 작은 방,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거리,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의 회사 그리고 그 안의 사무실 속 내 책상… 내 발길이 닿는 모든 장소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거대한 야구 경기장이며 나는 한 명의 플레이어다.


사람들은 야구가 인생을 담았다고,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야구는 투수, 타자, 포수, 감독, 코치, 볼보이 등 각 포지션을 맡은 인물이 독립적으로 경기를 수행하는 스포츠이다. 투수가 타자로, 포수가 감독으로 한 경기가 일어나는 동안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은 한 포지션 변경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야구의 규칙은 각 플레이어가 만드는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복잡하게 명문화했다. 인간 세계의 복잡한 사회 현상과 개인과 조직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야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선수끼리 몸을 격렬히 부딪치거나 배구나 탁구처럼 공이 코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결과가 빠르게 나오지 않는다. 1회부터 9회라는 이닝 동안 타석에서부터 1루, 2루, 3루를 거쳐 홈까지 도달해야 1점을 만든다. 한 점을 목표로 긴 호흡으로 달리는 모습이 고된 인간의 삶과 닮았다. 다만 인생은 거쳐야 할 베이스(루)의 개수와 홈이 어디만큼 멀리 있는지 죽기 전까지 가늠하기 어려울 뿐이다.


야구는 사계절 중 겨울, 시즌 중에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경기가 열린다. 매일이라는 꾸준함은 무섭다. 우리도 모르게 삶 한 구석에 자연스럽게 앉아있다. 평일 저녁 여섯 시 반, 누군가의 퇴근길에 시작하는 야구는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장이다.


유격수는 빠르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공보다 더 재빠르게 움직여 한 번에 캐치한다. 회사에서 조심스레 제안한 아이디어가 상사의 칭찬을 받았던 오후 세 시가 생각난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관중의 쌍 엄지와 환호가 내 기분을 대변한다.


투수가 공을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던지지 못하고 여러 번 땅바닥에 꽂는다. 볼 카운트를 알리는 초록색 불이 네 개까지 채워지면 관중들은 한숨을 쉬고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맨다. SNS와 포털 야구 중계 댓글 창에는 ‘이럴 줄 알았다’, ‘그깟 공놀이를 괜히 봤다.’, ‘야구는 그만 보고 내 인생에나 신경 쓰자’라는 식의 말이 우수수 달린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디. 이런 댓글 작성자하는 사람들이 알고보면 세상에서 가장 야구를 사랑한다. 야구가 지면 자기 삶도 1패를 적립하는 씁쓸함을 삼키는 사람들, 나도 그중의 하나다.


99%의 우리는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 평범함과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깟 공놀이’라는 분노와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조금 부족하고 서투른 자아를 탓하지 못하고 야구에 투정 부린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고, 팀 세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어제 어이없게 졌어도 오늘 다시 TV를 켜고 마는 지독한 애정이 여기에 있다. 결국은 포기 하지 않고 잔뜩 끌어안을 내 인생이니까.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그깟 공놀이가 제 인생입니다'로 지은 이유입니다. 책의 첫 장에 들어가야하는 프롤로그지만, 열 편 이상의 글을 쓰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왜 내가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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