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발간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네요
지금으로부터 십 여년 전의 봄, 대학에서 첫 휴학기를 학교의 본관 건물에서 보내고 있었다.(나는 두 번의 휴학을 했다)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나 인턴 같은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던 때처럼 부모님의 용돈을 받는 풍족한 휴학 생활은 어려웠으리라. 고민을 하던 와중, 동기로부터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종종 보이는 '근로장학생'이 꿀알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차피 같은 학교 학생이니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고 시간만 채우다 가면 된다며 한자나 영어같은 자격증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며칠 동안 학교 커뮤니티에 들락날락 거리다 바로 뜬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 일의 전임자가 삼성에 입사하게 되어 그만둔다는 사실도 왠지 안심이 되었다. 이 자리는 좋은 기운을 갖고 있구나. 진로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얻길 바라며 당장 내일부터 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근로장학생 면접을 나섰다. 그렇게 휴학이지만 여전히 하루의 여덟 시간은 학교의 강의실이 아닌 본관 사무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휴학은 중학교 삼학년, 열 여섯부터 꿈꿨던 일을 실현해보려고 저질렀다. 다들 아이리버 MP3로 대중가요를 듣던 시절, 단짝 친구의 가방에는 남색 시디플레이어와 여섯 장 정도의 시디(음악 앨범)가 들어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의 자리에 앉아 시디플레이어에 이어폰을 나눠끼고 들었다. '올드피쉬', '마이앤트메리', '델리스파이스' 같은 1세대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던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매일 십 분씩 쌓인 그 시간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한국의 남쪽 여수에 있던 한 소녀가 홍대앞에 있는 인디 음악의 세계에 출사표를 내던진 것이다.
오후 다섯시에서 여섯시쯤 정해진 근로 장학생 일이 끝나면 빠르게 움직여 지하철 6호선을 탔다. 신당역에서 내려 다시 2호선을 갈아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린다. 8번 출구로 나가 양 옆이 음식점과 술집으로 쌓인 거리를 지나 아주 긴 오르막을 오르면 그 유명한 '커피프린스' 카페가 있다. 공유와 윤은혜가 주연으로 출현한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등장한 실제 카페이다. 그 카페의 바로 건너편에 있는 라이브클럽 '빵'이 나의 목적지였다.
지하 일층으로 내려가면 라이브클럽의 작은 무대와 관객석이 펼쳐진다. 클럽의 입구에는 학교 교탁 같은 테이블이 있다. 입장료는 만 오천원, 추가로 음료를 한 잔 교환하는 토큰을 준다. 이 은색 토큰의 정체는 맥주 음료병의 뚜껑이다.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 머리처럼 삐죽삐죽한 모양의 병뚜껑을 납작하게 펴면 귀여운 토큰으로 변신 완료이다. 공연이 시작하고 더 이상 찾아올 관객이 없다 싶으면 나는 관객석 한 걸음 뒤로 향한다. 주방과 엔지니어 석이 있는 곳이다. 업소용 음료 냉장고 앞에 서 있다가 관객이 음료 토큰을 주면 바로 맥주나 웰치스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주방과 관객석은 길다란 아일랜드 식탁(?) 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허리 높이의 작은 문을 밀면 간단히 주방으로 넘어 갈 수 있었다.
관객석 너머 주방에 서있는 세 시간 동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밴드 음악의 라이브를 거의 들을 수 있고 게다가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라이브클럽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신인 밴드가 무대에 많이 섰는데 그들의 처음을 내가 볼 수 있어서 무척 감사했다. 해보겠다는 열정과 설렘, 그 두근거림이 무대 밖으로도 느껴졌다. 무대를 마치고 밴드가 집에 돌아가던 때면 오늘 공연 정말 좋았다며 응원을 건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밴드 사람들에게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는 좋은 끈이자 촛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당시 신인 밴드의 공연을 보며 흐뭇하던 나는 지난 한 달 전 서점이라는 무대에 서는 신인 작가가 되었다. 스스로 만든 무대였고 입장료를 내면 음료 토큰을 주던 라이브클럽과 달리 추가 서비스는 없다. 대신 샘플책에 추천 문장으로 쉽게 넘어가는 인덱스를 붙이고 표지에는 직접 작성한 네 줄의 소개를 붙였다. 내 책을 우연히라도 만난 분들을 위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정성스레 소개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알싸한 맥주 한 잔 같은 서비스였다. 당장 번화가의 큰 서점만 가더라도 보장된 선택지들이 매대에 있는데 과연 내 책을 읽어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려간 분들에게 볼 때마다 그랜절*을 하고 싶었다.
라이브클럽에서 만났던 그 밴드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내 책과 함께 하는 내내 당신의 시간이 무사히 지나갔길, 평온했길, 욕심을 더 내자면 행복했길 바란다.나의 처음에 기꺼이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초판본을 구매하신 여러분 모두 제 기운 받아 잘 되실 거에요. '야구공 크기만큼 좋아할 수 있다면'이 세상에 나온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부끄럽지 않게 꾸준히 쓰고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랜절: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등장하는 인사법으로 물구나무서기, 요가에서 머리서기 자세를 취한다. 만화에서 큰 예의와 존경을 차리는 자리에서 하는 인사법으로 일컬어진다.